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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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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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서연 교무의 우리는 하나입니다

지난 달 어느 날 한국어 수업이 끝난 후 ○○씨가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며 남았다. 다른 때 같으면 수업 후에 간식을 나누며 환담하다가 가방 챙겨 가기 바쁜 데 웬일인가 하여 시간을 내었다. 다른 친구들이 다 가고 난 후에 ○○씨의 첫 말은 “저 지금 쉼터에 있어요”였다. ‘쉼터’하면 우리들에겐 가정폭력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데, 그동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씨가 그럴 리가 있나 하여 속으로 긴장하며 무슨 사정인지 귀를 기울였다.


○○씨는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용서하고 참고 살려고 했단다. 남편이 외도를 실토하며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해서 이해하고 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아들의 외도를 부정하더니 남편도 말을 바꾸었다고 했다. 급기야 ○○씨더러 꼴도 보기 싫다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이혼하자고 하면서 폭력을 휘둘러 친구 집으로 피신하였다고 했다. 6년 동안의 결혼생활에 그런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혼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어머니와 남편은 이제 태도를 바꾸어 이혼해 줄테니까 1000만원을 가져오라고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한국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은 ○○씨에게 이혼은 곧바로 체류자격 상실이 되어 출국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처지에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씨는 과거에 임신 중 몸에 이상이 생겨 출산을 하지 못해 자녀가 없는 처지라 국적을 취득하기 쉽지 않다. 이런 경우 영주권을 취득하면 비록 한국민과 똑같은 권리 보장은 되지 않지만 체류자격이 영구히 보장될 수 있기에 많은 이주여성들이 국적취득의 대안으로 택하고 있다.


그런데 국적이건 영주권이건 여기에는 남편이나 남편 가족의 신원보증과 3000만원 이상의 재산증명서 제출이 필수이다. 남편이나 남편의 가족이 이렇다 할 재산이 없는 경우 국적취득을 하고 싶어도 신청조차 못하는 경우가 되고, 그럴 형편이 된다 하여도 남편 측에서 협조를 해 주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국적이나 영주권을 빌미로 이주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다.


○○씨의 남편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데다 아무런 재산이 없는 사람이고 가족의 경우 시어머니가 소유하고 있는 연립주택이 유일한 재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신원이며 재산 보증을 해 줄 생각은커녕 1000만원을 가져와서 이혼하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살던 집을 나왔지만 다행히 쉼터를 알게 되어 거기에서 지내며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는 사연을 듣고 ○○씨가 원하는 바를 물으니 본인은 이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가면 친정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며 어떻게든 체류자격을 갖고 싶다고 했다. 이에 우리는 남편과 그 가족 대신 ○○씨의 재정보증을 하기로 하였고 쉼터에서 신원보증을 하여 영주권 신청을 마치게 되었다.


한편, ○○씨에게 남편이나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을 돌려야 본인이 원하는 행복한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위로하였다. 마침 한국어 시간에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을 배운 터였다. 그 속담을 배울 때 미운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 대해 이주여성들은 열띤 회화를 하였는데 대부분 이 분들에게 상처를 준 한국인들에 대한 얘기여서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참 속 이야기를 하게 한 후에 나는,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담아두지 말고 속담처럼 떡 하나 더 주는 기분으로 털어내며 살자고 마무리를 지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준 영주권 신청 접수증을 보여주면서 마치 지금 영주권이 나온 것처럼 환하게 웃는 ○○씨의 마음에 드리운 아픈 추억이 속히 치유되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외국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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