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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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를 위하여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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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성하 교무의 미국교화 이야기

어려서 TV속으로 아예 들어가라는 언니 오빠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던 내 인생의 만화 영화가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명작인 캔디 캔디 입니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하며 시작하는 주제가를 동생과 장엄하게 이중창을 하면서 하마터면 TV 안으로 들어갈 뻔하던 우리는 캔디교 광신자였습니다. 내용은 어린 고아 소녀의 성장기를 신데렐라 스토리와 적당히 버무린 어린이용 신파였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에게 저 많은 시련이 어쩌면 저렇게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잊을만 하면 꼬이고 풀릴만 하면 또 꼬이는지 어린 눈에도 캔디의 인생은 참으로 난관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캔디는 한번도 자기에게 다가온 시련을 피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거나 도망치거나 하는 법 없이 융통성 없도록 정직하게 시련과 맞서 싸우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잡초 같지만 드라마틱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어린 열혈 광신도로서 캔디처럼 정직하게, 힘들지만 저렇게 씩씩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인생이라는 것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삼십대를 온전히 미국에서 보내고 교당 교화를 주임으로 2년 정도 마무리 하며 생각해보니 저는 중늙은 캔디가 된 것 같습니다. 요 며칠 올해 교화 결산과 신년 교화계획을 세우며 콜로라도교당 교화를 통해 누가 제일 많이 달라졌을까 찾아보았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무래도 교무 자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걱정을 오래 못하는 낙천적인 성격은 캔디와 닮았지만 그렇다고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고 인생과 투쟁을 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캔디형 인물은 애초부터 아니었습니다, 아니구 말구요. 언젠가도 말한 나무 그늘 아래 베짱이과의 인물인데 어느새 본인이 캔디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 교화를 다섯 글자로 표현하라고 하면 저는 “맨땅에 헤딩”이라고 하겠습니다. 맨땅에 점프하여 헤딩이라고 약간 오버를 하고 싶지만 그만큼 베이스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과한 액션을 취해야 겨우 생존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어쨌거나 헤딩을 하고 살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머리가 돌대가리여야 하겠지요. 좀 찧는다고 쉽게 깨지면 안되는 단단함이 있어야 할 것이요, 그 다음에는 그 헤딩에 대해 자조의 소설을 쓰며 스스로의 인생을 신파로 만들지 않을 천부적 낙천성이랄지 아니면 캔디처럼 고락을 맛보면서도 쉽게 자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성장하는 근성이 있어야 할 것 입니다. 하여간 호락호락하게 마음에 풍선을 불어 넣고 발을 땅에 디디지 않는 것도, 현실을 과정으로 여기지 않고 결과라고 판단하면서 남 먼저 좌절하는 태도도 둘 다 해외 교화상에서는 몹쓸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런 교화 환경이 저에게만 속한 이야기일까요? 이런 환경 속에서 설마 저만 캔디가 되었을라구요? 제 생각에 그나마 미국 캔디의 헤딩은 좀 나은 편이 아닐까 합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 캄보디아, 네팔, 중국, 일본 등등에서 ‘괴로워도 슬퍼도’ 끄떡도 없이 오늘도 내일도 계속 무한 헤딩 중이신 캔디 교무님들… 머리들은 무사하신지요.


한 해를 정리하며 잘 살았나? 묻다가 그 ‘잘’을 증명할 소득이 하도 미미하여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희미해지려고 하는 차에, 문득 싯귀 한 구절에서 위로를 발견합니다.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잘 못 살지는 않았다’ 무엇을 이루었냐고 물으면 보여줄 무엇도 없어 우물거릴지도 모르겠으나 우리 캔디들 적어도 잘 못 살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최대한입니다.


콜로라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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