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위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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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위한 글쓰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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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법인 교도의 모스크바의 창 4

고리끼 문학대학 개교 70주년 기념식에 다녀왔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함께 공부했던 러시아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사뭇 궁금했다. 러시아문학협회 회관 대강당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기야 1933년에 문을 열었으니 얼마나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을 것인가.


러시아 국적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각 공화국 출신의 졸업생들, 공산진영에 속해 있던 3세계 유학생들까지 졸업생들의 면모는 다양했다. 최고령의 졸업생은 구십이 넘은 원로로 43년 히틀러와의 전쟁을 치렀던 참전용사였다. 대학 1학년 생으로 조국을 위해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그룹으로 전쟁에 지원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살아 돌아 온 사람은 5-6명 뿐이었노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즉석에서 참전용사에 대한 묵념이 이루어져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웠다.


의례적인 인삿말부터 마음을 담은 축하말까지 출세한 졸업생 인사들의 발언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사람들 속에는 현직 몽고 대통령도 있었고, 불가리아 유명 시인과 베트남 대사와 러시아의 대형은행장, 문화부 관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학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 내심 “러시아 문학의 현재와 그 나아갈 길” 같은 세미나나 모두 발언을 기대했건만 모든 것이 너무나 공식적이고 정치적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들은 문학인으로서 꿋꿋하게 버티는 사람들 보다는 현실적으로 출세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대학이 어떻게 만들어진 대학이란 말인가. 1933년 문학에 재능이 있는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문학교육을 시킬 수 있는 기관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이 대학의 문을 연 것이 아니었던가. 그 기본취지가 많이 퇴색해 나중에는 문학관료들이 많이 배출되긴 했지만 엡뚜센꼬, 아이뜨마또프, 아흐마둘리나 같은 뛰어난 현대작가들 역시 배출되었다.


자유로운 문학혼을 지녔던 이 대학 졸업생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세월의 흐름속에서 먹고 살기위해 흥미위주의 가벼운 읽을거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연애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쓰고 있을까.


동급생들 중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과 시를 쓰고 있는 안드레이는 그 자긍심이 대단했다. 아는 친구들이 모두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지만 자기는 정통문학의 길을 걷고 있다면서. 그러면서 나에게 묻는다. “너는 러시아까지 유학을 와서 문학을 전공했는데 너희 나라 문학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느냐”고.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답하자 “그럼 너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쓰고 있는 글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도 역시 당당하게 답하지 못한 나는 우물쭈물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주 자랑스럽게 자기의 시집에 사인을 해주면서 읽어본 후 평을 해 달라고 연락처를 적어준다. 그리고 프로문학인은 아닐지라도 반드시 영혼을 담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라고 나에게 당부한다.


그랬다. 내가 경찰서나 관공서에서 ‘이 지긋지긋한 놈의 러시아’라고 욕을 해대면서도 마음속에서까지 러시아를 밀어내지 못하게 했던 건 바로 이 안드레이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소신껏 밀어 붙이며 인간을 이해하려 애쓰고 영혼을 노래하려 애썼던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문학을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으로 나누어서 오랜 세월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며 어린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한국문단의 원로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정권이 주문하는 대로 대중을 우매하게 만드는 목적에 충실했던 것일까.


순수문학, 참여문학, 민족문학, 분단문학, 노동문학, 소비에트문학…. 현실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사실 그런 말들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 좋은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만 있을 뿐이다. 올바른 역사의식, 삶에 대한 깊은 성찰, 숨탄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없이 그저 재주만을 피우는 작가는 아무리 글재주가 뛰어나도 좋은 작가는 아닐 것이다.


러시아나 우리나라나, 아니 전 세계가 구심점을 잃고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진통으로 보기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방향제시가 없기 때문이다.


시대상황을 파악하고,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작품을 잉태하는 문학인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이건 비단 문학이나 문학인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은 아닐 것이다. 각자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자꾸만 속물화 되어가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자기 주변을 둘러싼 잘못된 것들과 싸워야 하지 않을까.


나도 ‘내 영혼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


모스크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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