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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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속도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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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선조 교무, 신림교당

원내 속도 20 킬로.


열반 하신 분들의 유해를 모시고 영모묘원 대원전으로 가는 길의 속도표시다.


무거운 관을 모시고 상주들이 한발 두발 부모님의 육신이 머물러 계실 묘지까지 가는 길은 원내 속도 20 킬로도 빠르다. 한발 한발 영혼이 떠난 육신을 관에 모시고 비천무를 추는 영혼천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목탁 소리로 유해를 따라오실 ‘영혼과 더불어 대원전에 이르다가 영혼의 속도는 몇 킬로를 유지하며 이곳에 왔을까?’를 생각해 본다.


영혼의 속도는 번개보다도 더 빠를 수도 있고 한 순간에 적멸의 고요에 이를 수도 있는데, 죽음에 이른 분들의 살아오신 인생속도는 몇 킬로를 유지하며 살았을까? 과속이나 저속은 아니었나? 그리고 내가 걸어온 수양의 속도는 적절하였는가? 생각하게 된다.


W이론을 쓴 이면우 교도님은 “시대를 향도하는 사람으로서 3일이 되었는데도 생각이 바뀌지 않고 창의적 속도가 나지 않는다면, 영안실에 머물고 있는 송장과 같은 사람이다”는 이론을 말하여 공감한 일이 있다.


도시락 이론을 말하는 이동하 교도와 “道時樂(도시락), 도가 때에 맞아야 즐겁다” 즉, ‘도’란 무시로, 엄마가 배내짓을 하는 아이를 보고 ‘까꿍’하며 즐거워하듯, 모성이 그리운 사회에 어린아이 마음을 바라보듯 사물을 바라볼 때가 낙원이라는 것을, 그 체험 속에서 자성이 회복되는 바를 이야기 한 바가 있다.


대산종사께서 밝혀주신 전무출신 이론 중에 “마음은 천하의 앞에 서서 일하고 몸은 천하의 뒤에서 일할 지니라!”는 도가 있다.


생각은 늘 깨어 있고 행동은 그때 그곳 그 사람 그 생각에 맞아야 하고 그 정신은 대중 편에서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앞선 생각과 하심(下心)하는 자세로 가야 한다.


부활을 꿈꾸는 사회는 먼저 마음이 천진해져야 한다. 그래야 원래영성으로 부활이 되며 깨어나도록 선지식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과학과 도학의 연마가 있어야 깨어있는 영성으로 부활 될 것이다.


사람들 사는 길에서 서로가 디딤돌이 되도록 여래가 아이를 바라보는 하심(下心)을 부활하여 서로 교류하는 일이 평등성지로 가는 부활의 길이 아닐까? 아이 같은 순일 무궁한 마음으로 세상과 돈과 사람들과 물건들을 만나면, 그런 아무 것도 없는 본래영성의 몸짓으로 만나면, 도덕부활의 속도가 가속될 것이라 본다.


빨간불을 켜야 될 때 잘 멈춰 기도하는 자세나, 일심삼매에 드는 습관을 챙겨보자. “파란불은 언제나 켜져 있다!” 는 사실을 믿고 포기 하지 말고 신분의성 추진력을 운전 하자.


부활의 기수에선 도덕가의 사람들은 물욕의 욕심에서 돌아가는 길을 즐기며 갈 줄도 안다. 새해는 도덕성 회복의 속도를 생산하는 해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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