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이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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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이루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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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성하 교무의 미국교화 이야기

계획이나 목표, 불타는 신념, 불굴의 의지, 이런 단어에 대해서 애초에 심드렁한 회의주의자였습니다. 오히려, 인생을 왜 그렇게 독하게 살아야하는가, 흘러가는 대로 적당히 즐겁게 살면 안돼나? 어디에 목숨을 걸어본다랄지, 누구를 아낌없이 사랑한다랄지, 나는 대체 그럴 수가 없는 ‘중근’의 꼬리표를 달고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목숨을 걸고 달려 갈만한 일이, 그런 사랑이라는 게 있나? 목숨을 안걸면 달려지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하여간 가뿐하고 산뜻하지 못하게시리… 이랬지요.


생각해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는 지금 자기가 처한 처지대로인 것 같습니다. 또 그 처지만큼 보는 것도 간절하여 누구는 그런 일에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될 것을 누군가는 별 일이 아닌 것에도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하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가끔 가열차게(?) 교화에 매진 하다가 한번씩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 것인데…?’ 하구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다짐과 좌절과 재다짐을 반복해가며 다시 또 희망을 걸고 교화를 하느냐 하구요.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열심히 살듯 교무 또한 그러할 뿐입니다. 누군가 백만불을 벌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이 그가 사는 이유라면 교무는 성불 제중에 에너지를 쏟으며 사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인 것입니다. 다만 어느 시점에서 부터인가 그것이 좀 더 절실한 인생의 명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전혀 낯설었던 단어들을 대명제를 실현하는 수식어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계획적인’, ‘노력하는’, ‘불굴의’ 등등…. 스스로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자수성가, 인생 열전에 실릴 만한 형용사라고 생각했던 단어들입니다. 하여간에 이런 비장한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마도 그전에 내 인생이 그 정도 가벼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콜로라도교당에 발령을 받고서는 그 전에 몇 년 간 도대체 세워본 적 조차 없는 교화 계획이라는 것을 계속 세워 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계획적인’ 교무, ‘목표있는’ 교당을 서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무와 교도의 뜻이 함께 만나 하늘에 닿지 않는 이상, 뭔가 전략이나 계획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교화 희망을 적어보며 시작한 일입니다.


처음 계획을 세우며 반드시 이대로 이루리라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런 바람들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랬지요. 그런데 방향을 정하고 보니 자연히 그쪽 방향으로 계속 머리를 돌리게 되고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보니 목표도 꽤 닿을만 한 곳에 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기하다 생각했습니다.


올해는 좀 더 세밀하게 교화 계획을 세웠습니다. 허술했던 계획도 그나마 허술하여도 비슷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면 세밀하게 세우면 세밀한 점까지도 이루어 질 것 같아서 입니다. 가만히 계획서를 읽어보고 있으면 바람이 좀 들어가도 보입니다만 그것들을 현실화시켜 나가는 것이 공부를 증명하는 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상황은 아직까지는 물론 맨땅에 헤딩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유없이 헤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적어도 헤딩을 해야하는 절대 절명의 이유가 있습니다. 아프긴요. 어차피 석두거사의 자손인 것을요.


콜로라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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