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의 병진과 도덕 훈련 2, 사리 연구와 알음알이 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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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의 병진과 도덕 훈련 2, 사리 연구와 알음알이 얻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2.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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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현성 교도와 함께하는 정전공부 52

일원상을 신앙과 수행의 표본으로 제시해 주신 대종사님께서는 일원상 수행법이 바로 ‘수양, 연구, 취사’인 삼학의 병진임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그 진리를 체 받아서 자기의 인격을 양성하나니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아 천지 만물의 시종 본말과 인간의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걸림 없이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과 같이 마음 가운데에 아무 사심(私心)이 없고 애욕과 탐착에 기울고 굽히는 바가 없이 항상 두렷한 성품 자리를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과 같이 모든 경계를 대하여 마음을 쓸 때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리지 아니하고 모든 일을 오직 바르고 공변되게 처리하자는 것이니, 일원의 원리를 깨닫는 것은 견성(見性) 이요, 일원의 체성을 지키는 것은 양성(養性) 이요, 일원과 같이 원만한 실행을 하는 것은 솔성(率性)인 바, 우리 공부의 요도인 정신 수양, 사리 연구, 작업 취사도 이것이요, 옛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정·혜(戒定慧) 삼학도 이것으로서, 수양은 정이며 양성이요, 연구는 혜며 견성이요, 취사는 계며 솔성이라, 이 공부를 지성으로 하면 학식 있고 없는 데에도 관계가 없으며 총명 있고 없는 데에도 관계가 없으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성불함을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교의품 5장> 또한 말씀하시기를 “재래 사원에서는 염불종(念佛宗)은 언제나 염불 만 하고, 교종(敎宗)은 언제나 간경(看經)만 하며, 선종(禪宗)은 언제나 좌선만 하고, 율종(律宗)은 언제나 계(戒)만 지키면서, 같은 불법 가운데 서로 시비 장단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다 계정혜 삼학의 한 과목들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병진하게 하되, 매일 새벽에는 좌선을 하게하고, 낮과 밤에는 경전,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일기, 염불 등을 때에 맞추어 하게 하여, 이 여러 가지 과정으로 고루 훈련하나니, 누구든지 이대로 정진한다면 재래의 훈련에 비하여 몇 배 이상의 실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라고 삼학 병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교의품 20장> 그리고 삼학 병진의 중요함을 ‘쇠스랑의 세 발’에 비유하여 강조하시면서 “수양을 하는 데에도 연구, 취사의 합력이 있어야 할 것이요, 연구를 하는 데에도 수양, 취사의 합력이 있어야 할 것이요, 취사를 하는 데에도 수양, 연구의 합력이 있어야 하나니라.”라고 하셨습니다.<교의품 21장> 이러한 삼학 병진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원만한 인격을 양성하는 것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삼학과 계정혜의 공부법


대종사님께서는 불교의 ‘계정혜’ 공부법이 바로 삼학임을 말씀하셨으나 정산 종사께서는 불교의 ‘계정혜’와 삼학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과거에도 삼학이 있었으나 계정혜와 우리의 삼학은 다르나니, 계는 계문을 주로 하여 개인의 지계에 치중하셨지마는 취사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모든 작업에 빠짐없이 취사하게 하는 요긴한 공부며, 혜도 자성에서 발하는 혜에 치중하여 말씀하셨지마는 연구는 모든 일 모든 이치에 두루 알음알이를 얻는 공부며, 정도 선정에 치중하여 말씀하셨지마는 수양은 동정 간에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는 일심 공부라, 만사의 성공에 이 삼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 위에 더 원만한 공부 길은 없나니라.”<법어 경의편 13장>


우리 삼학 공부법에서 정신 수양은 동정(動靜) 간에 자성을 떠나지 않는 일심 공부이고, 연구는 모든 일과 이치에 있어서 두루 알음알이를 얻는 공부이며, 취사란 단순히 계문을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모든 작업에서 정의롭게 취사하는 공부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모름지기 수도자에게 있어서 수양 연구 취사의 삼학을 비유하여 이르시기를 항해를 하는 지남침과 기관수와 같다고 하셨던 것입니다.<교의품 22장>


사리 연구의 개념과 공부 과목


대종사님께서는 ‘사리 연구’에 대하여 “사(事)라 함은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이름이요, 이(理)라 함은 곧 천조(天造)의 대소 유무(大小有無)를 이름이니, 대(大)라 함은 우주 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요, 유무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 순환과, 풍운우로상설(風雲雨露霜雪)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를 이름이며, 연구라 함은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함을 이름이니라.”라고 정전에서 세세히 뜻을 새겨주셨습니다.


또한 사리 연구의 목적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우리에게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이나 우리가 지어서 받는 고락은 각자의 육근(六根)을 운용하여 일을 짓는 결과이니, 우리가 일의 시비이해를 모르고 자행자지한다면 찰나찰나 육근을 동작하는 바가 모두 죄고로 화하여 전정 고해가 한이 없을 것이요, 이치의 대소 유무를 모르고 산다면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의 원인을 모를 것이며, 생각이 단촉하고 마음이 편협하여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모를 것이며, 사실과 허위를 분간하지 못하여 항상 허망하고 요행한 데 떨어져, 결국은 패가망신의 지경에 이르게 될지니, 우리는 천조의 난측한 이치와 인간의 다단한 일을 미리 연구하였다가 실생활에 다다라 밝게 분석하고 빠르게 판단하여 알자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리 연구를 하는 목적은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고통과 즐거움의 근원을 알자는 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고통과 즐거움의 근원에 인과보응의 이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고통이 왔을 때 고통의 근원을 알게 되므로 이미 고통이 아닌 것입니다.


대산 종사께서는 연도치지(硏道致知)가 곧 혜(慧)이므로 일과 이치를 늘 궁구해서 대연구력을 얻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동(動)할 때에는 밖으로 묻고 배워서 지견을 넓히는 외학지식(外學知識)의 공부가 중요하고, 정(靜)할 때에는 안으로 의두와 성리를 연마하여 바른 지각을 얻는 내연진리(內硏眞理)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정전대의 9장>


사리 연구의 공부 과목으로는 경전 연마,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청법(聽法), 정기일기 등이 있으며 이는 모두 혜두를 단련시켜서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반야지가 솟아나게 하는 공부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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