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관, 환경친화적으로 새로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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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관, 환경친화적으로 새로 짓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6.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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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탁, (원남교당,성균관대교수)

흑석동 서울회관 바로 앞에 김포공항부터 강남 중심부인 논현동까지 연결되는 지하철 9호선 흑석역이 들어선다. 곧 개통되는 지하철 9호선은 벌써부터 서울시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상대적으로 지하철로부터 소외된 강남 중심부를 관통하고, 한강을 따라 펼쳐진 서울 동서축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회관은 강남 중심부에서부터 접근이 용이할 뿐 아니라 앞으로 눈부시게 발전할 한강 축 중앙에 위치함으로써 그 땅의 상징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던 흑석동 서울회관과는 전혀 다른 컨셉이 요구된다. 마치 명동에 가면 명동성당이 있듯이 한강에 가면 그 중심부에 원불교 서울회관이 있다는 생각이 시민들 머리 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려져야 한다.


종교를 비즈니스 모델에 대입하면 상징성이 높은 상품을 파는 조직이다. 상품에 해당하는 교리도 중요하지만 포장에 해당하는 건물이나 행사, 그리고 종교문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땅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를 선택할 때 교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포장술 때문이 아닐까? 그런 다음 상품인 교리를 자신의 것으로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성공한 종교단체는 천주교가 아닐까. 명동성당이라는 건축물로서 이 땅에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명동성당보다 더 큰 건물, 더 비싼 건물, 더 건축미를 자랑하는 것들이 많겠지만 어떤 종교 건축물도 명동성당의 상징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무엇보다 명동성당은 오랫동안 서울 한복판을 차지해 왔다. 언젠가 어머님 유품을 정리하다가 멀리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어머님 사진을 보았는데 그 때가 6·25 시절 서울 환도 직후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지만 명동 높은 곳에 자리한 명동성당만은 파괴되지 않아 사진의 좋은 배경거리를 제공해 준 셈이다. 물론 지금도 명동성당은 누구나 가 보고 싶어 하는, 아니 서울시민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나 서울 중심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드웨어를 넘어서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설명이 더 필요한데 아마도 그것은 지난 30여년에 걸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명동성당이 담당했던 역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금년에 별세한 김수환 추기경도 천주교도 여부를 불문하고, 아니 그보다 훌륭한 성직자가 이 땅에 없었던 것도 아닌데도 우리들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지 않은가.


유신체제 하의 암울했던 순간에도 명동성당만은 우리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였고, 그것은 전두환 체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종철 고문 살해사건이 계기가 되어 시민들이 전두환 정권에 항거할 때 의지한 곳도 명동성당이었다. 그래서 87년 6·29 민주화 선언이 가능하게 되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명동성당의 이런 적극적 역할은 천주교가 이 땅에서 교세를 확장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지 않았는가.


물론 흑석동 서울회관이 지금에 와서 명동성당을 대신해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그렇다고 이 땅에 민주화가 달성되었으니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사고가 있다면 그것도 문제이다. 우리 교단도 민주화 과정에선 뒤쳐졌어도 새로운 시대 코드에선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다른 종단 보다 앞서서 미리 교화의 토대를 제대로 다지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시대 코드는 단연 환경이다. 게다가 서울시는 서울을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그 핵심에 한강 프로젝트를 놓고 있다. 사실 세계의 어느 메트로폴리탄 급 도시를 가도 서울만큼 자연환경이 빼어난 도시가 없다. 도시 한가운데에 불쑥 솟아있는 남산, 그리고 도시를 가로 지르는 한강. 사실 한강만큼이나 강폭이 넓고, 그 안에 물이 가득 차 있고, 또 투명한 물을 자랑하는 강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한강이 친환경 도시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서울회관은 그 한강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서울회관을 환경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위치이다. 그래서 서울회관을 세계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환경친화적 건축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서양의 환경 운동을 넘어서서 동양적인, 아니 지금 서구 지성들이 빠져들고 있는 노장사상이 말하는 환경 개념으로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교법과도 일치하는 환경 개념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계적 건축가를 동원해서라도, 아니 유혹해서라도 서울회관을 다시 지어야 한다. 세계적 건축가라면 서울시가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한강 프로젝트, 그리고 한강의 자연적 이점, 또 종교건물이라는 상징성, 거기에 더해 으뜸가는 환경친화적 건물, 이런 요소만 갖고서도 자신의 대표적 작품을 서울회관 터에 남기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덤벼들 것이다. 만약 그 곳에 실용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빌딩을 올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단견이다. 만약 천주교가 명동이라는 비싼 땅에 성당 대신 상업용 건물을 지었더라면 어떠했을지 한번쯤 생각만 해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9호선 지하철 출입구를 나와 원불교 서울회관을 통해 옛 노량진 나루터에 이르러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게 된다면…, 아마 서울시 한강프로젝트에는 이런 요소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핵 방폐장 반대로 온 종단들이 불같이 일어났어도 ‘에너지 절약’이라는 간단한 대안 모색에는 침묵하던 이웃종교에 환경친화적 건물인 서울회관은 시대의 해답에 해당할 것이다. 마치 명동성당이 한때 우리 사회 민주화의 해답이 되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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