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무녀리'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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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무녀리'라 푼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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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해관 교무의 재치문답 8


훈련교무 시절, 수계농원에서 동지들과 논 100마지기 김매기 할 때의 기억이다.


당시 수계농원에는 양돈을 하고 있었다.


점심 후 쉬는 시간에 돼지우리를 둘러보는데 한 우리에 열다섯 마리 새끼들이 엄마 젖을 빨고 있다.



새끼들은 다 예뻐 빙그레 웃음이 솟고 도르레도르레하며 걔들을 불러보는데 녀석들은 맑은 눈을 껌벅이면서 마냥 젖빨기에만 열중이다.
언제 다가오셨는지 근산 원장님께서 “예쁘제” 하신다.


“예, 그런데 저들이 다 한 배로 나왔나요”


“그러제… 아는지 몰라, 저 쪽에 젤 작은 녀석을 머라는지 아는가”


“그러네요, 한 배에서 나왔는데 유독 저 놈만 작네요…


젖꼭지 차지도 못하고 밀리는 게 불쌍하네요… ”



“고 놈이 저놈들 중에 젤 형이야! 맨 먼저 나오느라, 문 열고 나오느라 고생해서 저리 작아, 조놈을 무녀리라 해! 문 열고 나왔다고 무녀리!”


“아항, 무녀리가 그런 뜻이네요… 문열이!”



교학대 1학년 때, 공타원종사 발인식에 열반표기를 들었다.


[大空心 大公心].


대산종사께서 공타원님을 정녀1호, 여자전무출신1호라 하시며 무녀리라 하셨다.


새회상 문을 여느라 혼신을 다바쳐 쪼그라졌다 하시며 님의 전무출신 정신을 다같이 체받자 하셨다.


공타원님 뿐이겠는가


대종사님도 판탕한 시국을 당할지라도 제도의 만능을 베푸시느라 색신불 53세로 서둘러 가셨고 주산종사도 전재동포구호사업 중 40세의 젊은 나이로 열반하였다.


초창당시의 모든 선진이 일원회상 개벽대문을 활짝 여시느라 무아봉공의 대희생을 감수하시어 무녀리가 되셨다.


면면촌촌에 교당이 서리라 하신 전망을 부촉삼아 이 마을 저 마을에 교당들마다 거기에 굽이굽이 정신쓴 흔적으로 하나같이 무녀리가 되었다.


그래서 원불교를 ‘무녀리’라 푼다.



대산종사님 1인1기를 부촉하실 때, 우연히 좌산님과 함께 승합차로 구릿골에 가는데, 한참 후진인 우리에게 조용히 부탁하신 말씀이 새롭다.


“하나씩만 창조하자.


우리회상은 아직도 창립기다.


한 일씩만 이뤄내자,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이냐! 해냈다하면 창조주가 되니 말이야! 그 중에 서두를 일이 있다, 전파를 잡아야 한다.” 무녀리가 되라 하심이다.


밖에서는 원불교를 부자라 한다.



그럼직도 하다.


이제 자그마한 신생의 종교가 종협을 만들고 종교인평화회의를 만들고 종교연합 창설을 제창한다.


통 큰 경륜을 일심합력으로 열어간다.


선천의 막힌 기운들, 견고해진 장벽들마다에 문을 열어 서로 통하게 한다.


울을 트고 본의를 되살려 하나되게 한다.


동서와 남북으로 연하는 마당이 되자 한다.



천개지벽(天開地闢)이라! 하늘문도 활짝 땅문도 활짝 도학문명도 활짝 과학문명도 활짝 열어가자 하신다.


원불교 역사는 문열이 역사다.


그래서 원불교를 무녀리라 푼다.




대종사 옥녀봉 아래에 도실(道室)을 신축하시고 이를 첫 수위단 회집실로 삼으시며 ‘대명국영성소좌우통달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라 하시었다.(선외록) 원기3년의 일이니 시창 그 미미한 시기에 호호탕탕 누만년 도운을 품어안으신 개벽대업의 명명식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개벽의 일꾼들은 모두 문열이가 되었다.



한 제자가 여쭈었다.


“대종사께서 36년을 이 회상 창립기로 잡으셨사오니 그때가 되면 이 회상이 얼마나 대창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회상의 대체 기초는 잡아질 것이나, 드러난 큰 발전은 아직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모든 회상의 발전사에 비겨 보면 앞으로 우리 회상은 발전의 속도가 과거 회상의 몇 천배 이상이나 빠를 것이다.”(선외록)



대종사 길룡리(吉龍里) 간석지(干潟地)의 방언(防堰) 일을 시작하사 이를 감역하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구인은 본래 일을 아니하던 사람들이로되 대 회상 창립 시기에 나왔으므로 남 다른 고생이 많으나 그 대신 재미도 또한 적지 아니하리라.



무슨 일이든지 남이 다 이루어 놓은 뒤에 수고 없이 지키기만 하는 것보다는 내가 고생을 하고 창립을 하여 남의 시조가 되는 것이 의미 깊은 일이니, 우리가 건설할 회상은 과거에도 보지 못하였고 미래에도 보기 어려운 큰 회상이라, 그러한 회상을 건설하자면 그 법을 제정할 때에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가 열리게 하며, 동(動)과 정(靜)이 골라 맞아서 공부와 사업이 병진되게 하고, 모든 교법을 두루 통합하여 한 덩어리 한 집안을 만들어 서로 넘나들고 화하게 하여야 하므로, 모든 점에 결함됨이 없이 하려함에 자연 이렇게 일이 많도다.”(서품8장)하시었으니 복중에 복을 인연복이라 하거니와 그보다 더 큰 복은 일복이라 하고 싶다.



간난의 수고만큼 보람 또한 혁혁할 법신불 새역사! 그 무녀리들로 남 먼저 입참한 홍복을 누릴 일이다.



망우청소년수련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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