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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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8.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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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윤호 , (장충교당)


종교에 속해 있지도 않지만 좋은 정신적 소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의 사려 깊음에 놀란다.



종교하고는 관계가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깊이 있고 내용 좋은 그 정신적 소스들을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가져왔을까?



직장이든 어떤 단체든, 상사, 선배, 후배들에게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정말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저 사람 참, 존경스럽다.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말이다.



지금껏 나는 대종경 수행품 29장 말씀에 근거하여, 그래도 ‘그 사람들보다는 우리가 낫다. 그들도 우리 교법으로 귀의해야 한다’고 하는, 뭐 그런 종류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대종경 수행품 29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화(會話) 시간에 전음광(全飮光)이 공부인과 비공부인의 다른 점이란 문제로 말하는 가운데, 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어떠한 경우에 이르고 보면 또한 다 삼학을 이용하게 되나, 그들은 그 때 그 일만 지내 가면 방심이요 관심이 없기 때문에 평생을 지내도 공부상 아무 진보가 없지마는, 우리 공부인은 때의 동·정과 일의 유·무를 헤아릴 것 없이 이 삼학을 공부로 계속하는 까닭에 법대로 꾸준히만 계속한다면 반드시 큰 인격을 완성할 것이라.”



그런데 과연 그 우월감은 맞는 우월감일까. 우리는 진보가 있고 사회인은 진보가 없을까.



지금 사회에는 종교와 버금가게 좋은 정신적 소스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을 취합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나누는 사람들도 많다.



종교의 영역에만 속해져 있던 ‘정신의 집중’ 즉 ‘기도’에 대한 부분조차 이미 기도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씨크릿이란 DVD 내용을 보면서 효험을 보는 비 종교인들도 생각 외로 정말 많다. 그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비전, 사명, 열정, 긍정마인드, 리더쉽 이런 종류를 가르치는 배움의 장도 정말 사회에 많다. 종교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또한 사회에서 좋은 입지를 구축하며 잘 살고 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지금은 정신적 소스가 무엇이냐, 또 그 양이 얼마 만큼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누가 가져다 쓰는가.



또, 어디에서 그걸 잘 가르치고 있는가의 문제다.



우리들은 대체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을 하는가. 그것 착각 아닌가. 우리는 그 사회인들보다 더 우월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 수많은 선진님들이 이뤄놓은 교단을 퇴보시키고나 있지 않은가.



대종경 수행품 11장에 보면, 대종사님께서 “나는 무슨 일이든지 나 혼자 연구하여서만 아는 것이 아니요, 여러 사람을 응대할 때에 거기서 지식을 취하여 쓰노니” 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지식과 지혜를 나누게 해줄 ‘공간’과 ‘시스템’이 세상이 원하는 일이다.



강연과 회화는 언제까지나 설교의 밑자락 정도의 위치에나 있을 것인가? 강연과 회화가 위에 있으면 있었지 결코 아래에 있을 시스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도 왜 우리는 모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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