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국민에게 깨어난 시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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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국민에게 깨어난 시민으로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9.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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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상덕 교무 , (원불교 청년회 사무총장)

오늘날 한국에서 ‘시민’과 ‘국민’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예를 들어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사람들이 매일같이“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1조를 노래하며 ‘국민주권’과 ‘국민의 힘’을 외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정치적 권리를 적극 행사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이러한 정치 참여를 가리켜 ‘시민정치’, ‘시민권력’이라고 불렀으며, 촛불집회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보여준 절제와 평화, 높은 사회의식과 성숙한 토론 문화를 두고 ‘시민정신’, ‘시민의식’의 발현이라고 말하였다.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시민과 국민이라는 개념은 많은 부분에서 의미를 공유하여 쓰거나 혼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시민’과 ‘국민’을 동일한 개념이나 뜻으로 사용하는 데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시민’이란 개념은 살펴보면, 유럽에서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절대왕정의 종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사회계급을 일컫다가 현재는 정치적 권리를 갖는 주체를 뜻하는 말로 보편적으로는 국민국가의 주권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국민’은 절대왕정이 붕괴된 이후 선거 등을 통해 통일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시민계급이 정치에 참여하고 대표자가 선출되면서 등장한 개념으로, 통일된 법과 정부체제의 지배를 받는 구성원을 일컫는 말이다.


개념이 시작된 배경과 역사성을 보아도 그렇고, 실제로 도시국가가 발달했던 이탈리아나 절대왕정의 역사가 없는 스위스 등지에서는 일찍이 다른 곳과 비견되는 ‘시민정신’이 발달했지만, 이와 달리 강력한 국가가 근대화를 주도했던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의무와 권리가 그대로‘국민’의 권리와 의무로 규정되어 오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시민’과 ‘국민’이란 개념 사이에는 정치적 주체성 실현과 주권의식의 유무 여부가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자발성과 참여의 권리를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보장하는 ‘시민사회’의 모습인가? 아니면 국가라는 거대 조직에 귀속되어 있는 하위주체인 국민으로 살아가는 ‘국민국가’의 모습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의 근원은 내가 고민하는 화두와 궤를 함께 한다.


변화에 부침하는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운동에 몸담아 온 필자가 요사이 화두로 삼는 것은 정치적 주체로서 급부상하며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안아오는 데 적극 참여하고 있는 시민과 시민사회의 올바른 역할과 전망이다. 또한 ‘일원주의는 대세계주의’라는 소태산 대종사가 주창하신 깨침의 소리, 일심(一心)의 소리, 진리의 가르침에 귀기울이도록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이를 널리 알리는 데 있다.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라는 저서에서 세계시민권 Cosmopolitan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 개념은 세계의 모든 시민이 어디서나 여행하고 체류할 수 있는 권리, 어디서나 적대적으로 대접받지 않을 권리, 지구에 대한 공동의 권리와 책임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권리와 책임이 보장되는 가운데 최소한의 평화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TV, 자동차, 반도체, 조선, 컴퓨터, 휴대폰 등 첨단 물품을 수출하는 세계 주요국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러한 급성장과 더불어 바탕으로 가져온 물질적 풍요의 병폐도 함께 성장했다. 그러한 현실은 지금도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으며, 결국에는 사람이 우선이 아닌 경제개발논리가 우선인 아픈 현실을 끊임없이 재 생산하고 있다. 지금도 어처구니없는 4대강 개발로, 용산사태의 외면자로 국민들을 길들이고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국가의 국민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과연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스스로 자각한 주체로 자유를, 인권을, 평화를, 노사협력모델을, 비정규직 해법을 세계에 나누어 줄 수준이 되었는가? 물질만능주의를 뛰어넘어 정신과 도덕이 살아 있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데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가?


일찍이 대종사님께서 기원하였던 ‘도덕의 부모국’, ‘정신의 지도국’으로서의 새로운 대한민국은 상부의 지시를 기다려서 무조건 순응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도 없으며,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국가의 일구성원으로서 억압을 깨뜨리지 못하는 국민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주권의식으로 새롭게 깨어나는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창한다. 깨어난 시민은 곧 세계시민이라는 깨달음을 시작으로 인종과 민족을 넘어서고, 일 국가만의 이익을 위하는 울타리를 넘어서 정의실천의 주체들로 바로서서 평화 실현의 공공성과 연대성을 실천하는 주인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깨어난 시민’은 공동체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 서로 관계 맺으며 공동의 문제를 숙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이다. 국가주도적 정책이나 혜택에 주권을 내맡기는 ‘수동적 국민’이 아닌 평화와 인권 자유와 같은 본래의 권리를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시민 정신을 보유한 깨어난 시민이 필요한 때다. 억압된 국민에서 깨어난 시민으로 거듭나 참여하고, 연대하고, 실천하고, 개혁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 깨어난 시민의 시작은 지금 여기서부터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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