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디딜방아'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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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디딜방아'라 푼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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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해관 교무의 재치문답 11

출가식하고 저희들 교화일선으로 나갑니다. 인사간 자리, 환한 미소로 격려하시는 어르신, 엽서 하나를 꺼내시는데 ‘원근친소(遠近親疎)’라 싸인펜 휘호가 선명하다.


“이거 누가 한번 새겨봐라!”


우리 세대는 한문도 배운 세대인지라 한 동무 주저없이 답하는데,


“원. 근. 친. 소…”


“잘 읽었는데 그 뜻을 새겨보거라!”


“멀고 가깝고 친하고 성글고…”


“그러니까 어쩐다는 말?”


“모든 관계가 그렇다는 말 아닌가요?”


“그럼 그 관계를 그냥 그대로 갈래? 어디 누구 다르게 새겨볼 사람!”


“? ? ?… ”


잠시조용하더니 한 동무 손을 번쩍 든다.


“근한 이 원하고 소한 이 친하라!”


“맞았다, 어디 이번엔 거꾸로도 새겨 볼래?”


“소친근원(疏親近遠)… 친한 이 좀 성글게 먼 사람 좀 가깝게…”


“올치올치 백점이다. 이게 교화의 비방이다. 이제 수련기 마치고 교화일선에 나서는 우리, 모두를 이렇게 대하고 만사를 이 표준으로 지도해 봐라! 그래서 원근친소에 휘둘리지 말고 원근친소 불공으로 두루 화하게 하여 보라!”


그래그래그래, 속으로 주억이며 왜나는 외갓집 디딜방아가 생각났을까?




원불교는 디딜방아라 푼다. 디딜방아는 꼭 그만큼의 무게로 꼭 그만큼의 곡식을 빻아낸다. 디딜방아는 중심축이 한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에 치우쳐 있어 그 치우침을 고르려면 짧은 쪽에 나의 무게를 실어야 한다. 그 수고로움으로 긴 쪽을 들어올려 방아를 찧어낸다. 먼 쪽 가까운 쪽이 원근불공으로 방아를 찧는다. 친소비방으로 모두를 아우른다. 그래서 먼 쪽이 가까운 쪽 되고 이쪽이 저쪽 되며 친함이 성함으로 성함이 친함으로 어우러져 두루 화한다. 대산종사님의 원근친소 법문은 명사(名詞)를 동사(動詞)로 바꾸어 주신 묘방이어서 교화의 비방으로 평생 교역의 지침이 되었다. 그래서 원불교를 디딜방아라 푼다.




한 제자 교칙(敎則)에 크게 어그러진 바 있어 대중이 추방하기로 공사를 하자, 대종사 너희가 어찌 차마 이러한 공사를 하느냐. 그는 나의 뜻이 아니로다. 나는 몇 만 명 제자만이 나의 사람이 아니요, 몇 만 평 시설만이 나의 도량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이 다 나의 사람이요, 온 세계 시설이 다 나의 도량이니, 나를 따르던 사람으로 제가 나를 버리고는 갈지언정 내가 먼저 저를 버리지는 아니하리라. 하시며, 그 제자를 직접 부르시사 혹은 엄히 꾸짖기도 하시고 혹은 타이르기도 하시어 마침내 개과천선의 길을 얻게 하여 주시고,(실시품 6장) 대종사 하루는 한 제자를 크게 꾸짖으시더니 조금 후에 그 제자가 다시 오매 바로 자비하신 성안으로 대하시니, 그 연유를 묻자 아까는 그가 끄리고 있는 사심(邪心)을 부수기 위하여 그러하였고, 이제는 그가 돌이킨 정심(正心)을 북돋기 위하여 이러하노라.(실시품 24장) 하신다. 신심 있고 선량한 제자에게는 조그마한 허물에도 꾸중을 더 하시고, 신심 없고 착하지 못한 제자에게는 큰 허물에도 꾸중을 적게 하시며 조그마한 선행에도 칭찬을 많이 하시는지라, 한 제자 그 연유를 묻자 열 가지 잘하는 가운데 한 가지 잘못하는 사람은 그 한 가지까지도 고치게 하여 결함 없는 정금미옥을 만들기 위함이요, 열 가지 잘못하는 가운데 한 가지라도 잘하는 사람은 그 하나일지라도 착한 싹을 키워 주기 위함이니라 하신다.(실시품 39장) 어느 신문에 우리를 찬양하는 기사가 연재되는지라 대중이 모두 기뻐하자 이르시기를 칭찬하는 이가 있으면 훼방하는 사람도 따라서 생기나니, 앞으로 우리 교세가 더욱 융성해지고 명성이 더욱 드러남을 따라 우리를 시기하는 무리도 생겨날 것인즉, 그대들은 이 점을 미리 각오하여 세간의 칭찬과 비방에 너무 끌리지 말고 오직 살피고 또 챙기어 꾸준히 당연한 일만 행해 나가라, 하신다.(교단품 26장)



예쁜 이 예쁘게 보는 일이야 누구나 한다. 미운 놈을 예쁘게 봐주는 게 보살이지 하신다. 그리하여 미운이를 예쁜이 만들고 어긋난 이를 안아 가지런히 바루어 내는 육조혜능의 지혜방아를 다시 디딘다. 한 사람 한 사람 그에 딱 맞는 실지불공을 들이대서 원근친소가 모두 상생선연으로 화하게 하는 은혜방아를 찧는다. 그래서 원불교는 디딜방아라 푼다. 해생어은(害生於恩)이니 그 해의 근원인 은을 살펴 감수(甘受)하고 은생어해(恩生於害)니 목전의 해독을 뒤집어 은혜 만드는 감사공부를 하자 하신다. 은생어해 해생어은의 디딜방아로 만사를 불사로 승화시키자 하신다. 원불교는 그래서 나의 공부심 대중심으로 온 세상 은혜의 떡방아소리 정겨운 용심의 디딜방아다. 이제 곧 추석이다. 원불교의 디딜방아가 쉬지 않으매 세상은 날마다 명절이다.




망우청소년수련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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