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마중물'이라 푼다
상태바
원불교는 '마중물'이라 푼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0.15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양해관 교무의 재치문답 12

어릴적 농고집 앞마당엔 작두시암이 있었다. 세 집이 함께 사는 이 집에서 작두시암은 여름날 등물을 하는 시원함의 공간이요, 쌀 씻고 상추 씻는 맑은 꿈의 마당이었다. 작두시암은 그래서 늘 촉촉하였는데 어쩌다 펌프질을 한나절 이상 쉬고 나면 아무리 작두질을 해도 푸하푸하 헛기침만 하고 물은 올라오지 않는다. 이럴 때면 어머니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부엌 항아리에서 한 바가지 물을 퍼다 넣어 주시며 이제 해봐라 하신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푸착폭착 하면서 그 시원한 지하수가 쿠루루 크루루 따라올라 오곤 하였다. 훗날 그 한 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 함을 알고 참 예쁜 이름이구나 하며 혼자 싱그레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고대하던 해방은 맞았으나, 과도기의 무질서와 혼란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운데, 전재 동포들은 만주에서 일본에서 물밀듯이 돌아 왔다. 건국 사업에 협력하는 첫 길은 귀환 전재 동포의 구호라고 생각하신 정산 종법사는 원의(院議)의 찬동을 얻어, 원기 30년(1945.乙酉) 9월4일 이리 역전과, 9월 10일 서울 역전에 「귀환 전재 동포 구호소」를 설치하게 하여, 서울에서는 6개월 반 동안, 이리에서는 13개월 반 동안,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방황하는 전재 동포들에게 식사 의복의 공급과 숙소 안내, 응급 치료와 분만 보조 및 사망자 치상(治喪) 등으로 자비의 손길을 뻗치게 하시었다. 구호 사업은, 총부 간부 일부와 청년 임원들이 동원되어 주로 지휘에 당하고, 20 여개 지방의 교도들이 자진 동원하여 1주일씩 교대로 노력한 바, 그 알뜰한 활동은 당시 모든 구호 단체의 사표가 되었고, 일반 사회의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부산에도 3개월, 전주에서도 5개월 동안 부(府)당국의 구호 사업에 재가출가의 많은 인원이 동원하여 적극 협력하였다. 당년도 사업보고에 의하면 4개 지구의 구호소에서 구호 받은 동포수가 80여만명, 구호에 동원된 교도 수가 5백여명, 교도 동원 연 일수(延日數)가 1만 3천여일, 동원 대신 노임 제공과, 동원에 따른 제반 비용이 상당액(약 1백2십만원)에 달하였다. 이 때 서울 구호소에서는 「허영의 생활을 안분의 생활로, 원망의 생활을 감사의 생활로!」 등 교강의 정신으로 작성한 전단 수 십만매를 구호 받는 동포들에게 돌렸고, 귀환 학병들을 위한 사상 강연회를 주최하였으며, 한남동 정각사(漢南洞正覺寺)에 수많은 전재 고아를 수용, 서울 보화원(초대원장 黃淨信行)을 발족시킴으로써 새 회상 자선 사업 기관의 효시를 이루었고, 수위단 중앙 단원 송도성은 구호 중 전염병으로 마침내 순직하였다.(원불교교사, 전재 동포 구호와 건국 사업)


빛바랜 사진 한 장이 기억에 선명하다. “동포를 살이기 위하야 우리는 거리로 나아간다” 회상창립의 간난한 시절, 갈급한 세상을 구하고자 원불교는 온 힘을 다하여 전재동포 구호사업에 나선다. 원불교를 ‘마중물’이라 푼다. 해방공간 바로 그 시절 저 속깊은 곳에서 숨어 흐르던 동포애를 길어 올린 마중물이었다.




단원들이 방언 일을 진행할 때에 이웃 마을의 부호 한 사람이 이를 보고 곧 분쟁을 일으키어 자기도 간석지 개척원을 관청에 제출한 후 관계 당국에 자주 출입하여 장차 토지 소유권 문제에 걱정되는 바가 적지 아니한지라 단원들이 그를 깊이 미워하거늘, 대종사 이르신다. 공사 중에 이러한 분쟁이 생긴 것은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시험하심인 듯하니 그대들은 조금도 이에 끌리지 말고 또는 저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지도 말라.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이치의 당연함이어니와 혹 우리의 노력한 바가 저 사람의 소유로 된다 할지라도 우리에 있어서는 양심에 부끄러울 바가 없으며, 또는 우리의 본의가 항상 공중을 위하여 활동하기로 한 바인데 비록 처음 계획과 같이 널리 사용 되지는 못하나 그 사람도 또한 중인 가운데 한 사람은 되는 것이며, 이 빈궁한 해변 주민들에게 상당한 논이 생기게 되었으니 또한 대중에게 이익을 주는 일도 되지 않는가. 이 때에 있어서 그대들은 자타의 관념을 초월하고 오직 공중을 위하는 본의로만 부지런히 힘쓴다면 일은 자연 바른 대로 해결되리라 하신다.(서품9장) 원불교는 자력과 공심의 마중물이다. 소유권이 대수랴 대중에 이익이면 그게 우리 일이지 하신다. 분쟁조차도 정신개벽 사업의 거울로 삼으사 무아봉공의 정신을 길어올리신 마중물이 되게 하시었다.



원불교는 한 바가지 마중물이다. 교단사 이제 백년을 바라보며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필요한 자리마다 원불교는 한 바가지 마중물로 세상에 다가서곤 하여왔다. 정신개벽의 기치 아래 삼동윤리로 하나의 세계건설을 조용히 외치며 유엔에서 종교연합(UR)을 제안하고 국회에서 통일론을 역설하며 참문명 세계를 위해 힘미치는만큼 세상 일의 뒷자리에서 겸허히 손 내밀어온 한 바가지 마중물이다. 이제 순일한 마음 가다듬어 상복으로 추석을 쇤 용산참사 현장, 바로 그 자리에 한 모금 마중물로 다가서야 할 때가 아닌가?


망우청소년수련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