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신종플루'를 앓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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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신종플루'를 앓다보니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1.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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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류법인 교도의 모스크바의 창 13

모스크바에 독감주의보가 떨어지자마자 독감에 걸려버렸다. 목이 약간 따끔거린다 싶더니 순식간에 39도를 넘어 40도에 육박하는 열이 올랐다. 아플 만큼 아프면 열이 내리겠지 싶었는데 해열제를 먹어도 이틀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콧물범벅에 온 몸은 왜 그렇게 쑤시고 아프던지. 한국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정보로 봤을 때 신종플루 일 확률이 높은 증상이었다. 의사진단 없이 약국에서 타미플루를 사다가 그냥 먹어버렸다.


내 말을 들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타미플루를 진단서 없이 그냥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들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놀랄 일인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역시 의사 처방전 없이 약을 사먹지 않았는가. 어디가 아프면 병원 갈 일 없이 그냥 약국에서 증상 말하고 약을 사먹었던 기억만 있던 나는 여기 러시아에 처음 왔을 때 의사처방전 없이는 약을 살 수 없어서 너무나 불편했다. 외국인이라 의료보험증이 없으니 의사를 만나러 갈 수도 없었다. 유료시스템이 없이 거주지별 담당의료 체제로 되어 있어 보험증 없이는 병원등록조차 시켜주지 않아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여기 생활이 좀 익숙해지자 필요한 의사선생님에게 직접 치료비를 줄테니 진료를 해달라고 사정하면 대부분 진료를 해주었다. 소련의료체제에 익숙해 있던 나이 드신 의사들은 어떻게 돈을 받고 치료를 하느냐며 그냥 해주기도 하고, 그래도 성의라며 진료비를 드리면 무슨 큰 죄나 짓는 것처럼 당황스러워 했다.


소련이 붕괴되기 전에 잠깐 혜택을 보았던 소련의 의료시스템은 나에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임산부와 어린이는 국적 나이 거주지를 불문하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던 그 당시 보건법에 의거해 나는 시설은 열악하지만 성의 있는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여기도 이젠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무상의료라지만 실제로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뒷돈이 많이 들어 여기 사람들도 어지간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참아버린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자 국가는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팽개쳐버렸고 예전의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주택 제도를 경험했던 나이든 세대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전의 한국 모습과 흡사하다. 약도 다국적기업이 뿌린 약을 파는 듯 약사들은 비싼 수입 약을 권한다. 소비자 고발프로에 보면 약국에 납품되는 약의 70% 이상이 가짜지만 국가의 통제력이 약해 국민들만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자칭 신종플루’를 앓으면서 나는 러시아에서 어떻게 신종플루에 대처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언론을 모니터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는 신종플루에 대해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나 에스토니아, 미국, 중국의 상황만 단신으로 보도될 뿐이었다. 다만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급성호흡곤란으로 대학생 두 명이 사망했다카더라, 촬영을 하던 여배우가 갑자기 고열이 나더니만 급성폐렴에 걸려 하루 만에 사망했다카더라는 소문이 잠깐 나돌았다. 그것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고 잠깐 언급될 뿐이었다. 신종플루 증상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티비와 인터넷에서는 단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다.


날마다 몇 명이 사망했는지 호들갑을 떨어대는 언론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는 한국 상황과 비교해볼 때 러시아는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는 독재국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올바른 대처방안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도가 지나치게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다른 것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한국과 국민들에게 신종플루의 위험성과 그 대처방안을 숙지시키는 대신 침묵과 언론 통제로 일관하는 러시아 중 어디가 더 나은 나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결국은 두 나라 정부의 대처방안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현 정권에 유리하게 호들갑과 침묵으로 언론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말이다.


모스크바에 독감주의보가 떨어지면서 모든 초중고가 2주간의 가을방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주들도 학교장의 재량 하에 휴교가 결정된 곳이 상당하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영화관으로 미술관으로 쇼핑센터로 바쁘게 쏘다닌다. 가끔씩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모스크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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