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집 청소년 쉼터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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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집 청소년 쉼터의 아이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1.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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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해윤 교무의 교정교화이야기 9

가끔 은혜의 집을 방문하는 교도들에게 소지품을 잘 간수해 달라는 말을 몇 번씩하게 되는데, 그것은 소년원에서 나온 청소년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면 미리 주의를 주느라고 하는 부탁이다.


그 날도 몇 분의 교도들이 방문을 해서 법회를 보고 돌아가기 직전에 가방 속에 든 현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려왔다. 분명히 이곳에서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태성이를 조용히 불렀다.


“태성아! 교도님 가방 속에 있던 현금이 없어졌다는데 어디 있는지 아느냐?”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전 아니예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는 펄쩍 뛰며 생사람 잡는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지만 나도 이제 어언 20여년을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그들의 행동 하나에서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정도는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 만약에 지금 가져간 것을 내놓으면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넘어 가겠지만 아니면 바로 다시 소년원으로 돌아가도록 해 줄 텐데, 네가 선택해라.”


이렇게 말하며 조용히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잠시 무거운 침묵 속에 그가 고민하다가 숨겨놓은 돈을 가져왔다.


태성이는 벌써 우리 집에 온 지가 두 번째다. 처음 소년원에서 퇴원하여 왔을 때는 열여섯의 나이에 덩치는 물에 불은 건빵같이 컸지만 행동수준은 유치원생에 학습수준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는데 다행히 소년원에서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퇴원하였다.


거의 매일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며 은혜의 집을 PC방 삼아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해서 작은 강 교무의 갖은 노력으로 어렵사리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켜 주었다. 새 학기가 되어 교복까지 차려입고 학교를 가는 그는 매우 신이나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늘어놓았고, 우리는 그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 뿐이었고 공부가 어려웠던 그는 겨우 2달이 채 안되어 반 친구들의 가방을 모두 뒤져 싹 쓸어 도망가 버렸다. 학교에서는 이해심 많았던 담임선생님의 배려 속에 소년원 퇴원생을 받아주었지만 결국 문제만 남긴 꼴이 되었으니 은혜의 집에서 보내는 아이들을 이제는 다시 받아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보름쯤 후 강원도 원주에서 편의점에 들어가 흉기로 종업원을 위협하며 어설픈 강도 짓을 하다가 잡혀서 소년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렇게 일년 여를 지낸 후 다시 은혜의 집에 오게 된 것이다.


“너 같이 그런 어설픈 강도에게도 사람들이 무서워 하냐?”


그는 제법 어깨를 으쓱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요. 다 통해요.”


“그래 이번에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


그는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했다. 작은 강 교무는 여기 저기 또 알아보고 수차례 부탁을 하여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직업학교에 입학을 시켜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개월 만에 그만 때려치우고 다시 청소년 쉼터를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이미 전에 중졸 학력도 없는 정호가 왔을 때는 헌산중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졸업을 시켜 원경고등학교를 입학시켰지만 1학년을 겨우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던 경우도 있다. 취직을 시킨 아이들은 잘 견디는가 싶으면 한두 달 만에 그만 두고 만다.


용수는 그 중에서도 비교적 오래 직업 활동을 해온 경우이다. 처음에는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은혜의 집으로 와 있는데 여기가 청소년 쉼터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혼숙 내지는 신혼살림 차려주는 곳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그러다 이사짐센터에 취직을 해서 일은 힘들었지만 잘 견디었고 소년원을 후원해 주는 사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작은방 한 칸에 살림살이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표로 했던 군입대 전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만 때려치우는 바람에 회사에서는 다시는 퇴원생들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제는 면목이 없어서 더 부탁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한편 생각해 보면 매번 아이들을 데려와 제대로 성공시키지도 못하고 실패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면서도 거기까지 성공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하곤 한다.


우리 은혜의 집 청소년 쉼터에 오는 경우는 모두 가정이 없어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을 위해 편안한 집을 만들어 주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그런 편안한 곳에 대한 느낌은 잠시뿐 한적한 농촌마을에 있는 은혜의 집은 답답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결국 청소년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교육과 생활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 기존의 학교와 같은 틀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교육현장을 모색해 봐야 한다는 숙제를 아이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은혜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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