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그 바보'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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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그 바보'라 푼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1.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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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해관 교무의 재치문답 19

집에 들면 노복 같고 들에 나면 농부 같고 / 산에 가면 목동 같고 길에 나면 고로같이 / 그렁저렁 공부하여 천하농판 되어보소/ 뜻이 있게 하고보면 천하제일 아닐런가.




일제 강점기 드세지는 탄압을 건너시며 읊으셨다는 천하농판가. 일이 버겁고 심경이 스산할 때 즐겨 외우면 마음이 다스려지곤 하였는데 근자에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때 공개된 한 어린이의 바보 그림을 보며, 또 바보 노무현 국민장을 봉행하며 거듭 읊조렸던 기억이 새롭다. 이런 경우의 바보는 모자라고 덜떨어진 이를 지칭하기보다는 넉넉함을 기리는 칭찬이리라. 그래서 이참엔 원불교를 ‘그 바보’라 푼다.


방언 일이 완성될 즈음, 이웃 마을의 부호 한 사람이 간석지 소유권을 가로채려하자 이르신다. 공사 중에 이러한 분쟁이 생긴 것은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시험하심인 듯하니 그대들은 조금도 이에 끌리지 말고 또는 저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지도 말라. 사필귀정이 이치의 당연함이어니와 혹 우리의 노력한 바가 저 사람의 소유로 된다 할지라도 우리에 있어서는 양심에 부끄러울 바가 없으며, 또는 우리의 본의가 항상 공중을 위하여 활동하기로 한 바인데 비록 처음 계획과 같이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나 그 사람도 또한 중인 가운데 한 사람은 되는 것이며, 이 빈궁한 해변 주민들에게 상당한 논이 생기게 되었으니 또한 대중에게 이익을 주는 일도 되지 않는가.(서품9장) 하신다. 그 용심의 웅대함이 천하농판 그 바보다. 그래서 원불교를 그 바보라 푼다.


해방후,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일심합력으로 마치고 나자 그 공적이 인정되어 일인들이 놓고 간 적산가옥과 토지를 불하할 적에 우리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는데 팔타원 황정신행님이 서울역 앞의 구호소사무실 자리나 지금 신라호텔 자리인 박문사를 불하받자고 품위를 올리자 정산종사께서는 “아기가 짐을 너무 많이 지면 못 일어선다, 욕심 너무 내지마라” 하시며 말리신다. 범부의 눈으로 보면 똑 바보요 멍텅구리다. 모든 것을 구하는 데에 범부는 도가 없이 구하므로 구하면 구할수록 멀어지고, 불보살은 도로써 구하므로 아쉽게 구하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돌아온다(요훈품17장) 이르신다. 중생은 영리하게 제 일만 하는 것 같으나 결국 자신이 해를 보고, 불보살은 어리석게 남의 일만 해주는 것 같으나 결국 자기의 이익이 되나니라(요훈품21장) 이르신다. 그래서 범부는 그냥 바보요, 불보살은 천하농판 ‘그 바보’다.


정산종사 유지를 받들어 십수년을 도량으로 일군 신도안 삼동원, 당시 정부가 삼군본부를 세운다고 삼동원 터를 내놓으라 하자 대산종사 이르신다. 정교동심인데 나랏일이라니 합력하자 하시며 포부와 경륜이 구석구석 배인 삼동원을 선뜻 내놓으신다. 무조건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 삼군본부가 철수할 적엔 그대로 우리에게 돌려달라 하신다. 이제 그 자리에 원불교 군법당을 짓는다 한다. 멀리 보면 삼군본부가 어찌될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천하농판 그 바보의 취사니 아직 어두운 눈에는 그 큰 경륜이 짐작되지 않는다.


교당들의 역사를 봐도 그렇다. 그 터가 6.25때 집단처형장이었다 한다. 한 서린 터라 주민이 모두꺼리는 그 자리에 원불교의 간판을 걸고 지성으로 원음을 전한다. 이임교무 부임교무에게 이르기를 원광어린이집 ‘원아 걱정은 마소! 내가 6년을 천도재 모시어 해원상생불공을 하였으니 그들이 다 이리로 올걸세’ 하셨다더니 유아가 넘쳐나 줄을 섰다 한다. 이런 교당이 전국에 드물지 않다. 주민들은 뭘 모르는 원불교 저 멍텅구리가 둘려서 샀다고, 바보짓 한다고 혀를 찼단다. 바보짓. 세인의 눈에는 바보짓으로 보이는 그 간난의 성업들을 엮어 오늘의 원불교를 이루었다.


출가위(出家位)는 농판이 되고, 목침이 되어야 한다 부촉하신다. 보통 사람이 대도인을 알아본다고 아무리 장담해도 두 수만 높이 점(点) 놓으면 다 의심하고 떨어진다. 참판보다 농판이 결국에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대산3집) 하신다. 제생의세의 큰 뜻으로 일하는 농판들은 큰 경륜을 굴린다. 한 수 위에 점을 놓을 줄 안다. 원불교는 천하농판 그바보가 맞다. 원불교의 역사는 그래서 바보들의 행진이다. 큰 바보 ‘그 바보’들의 이어달리기라 하겠다. 이에 원불교를 ‘그 바보’라 푼다.


망우청소년수련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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