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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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를 입고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2.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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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진상 교무의 '우스리스크에 희망을'



수다를 떨었다. 고려인과 러시아인과 그리고 나, 뭐 내가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아서 같이 수다를 떤 것은 아니다. 내가 수다를 떨 때면, 언제나 우리 릴리아가 고생이다. 실시간 통역을 해 대느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한국의 음식이야기다. 난 하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다. 이곳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너무도 힘든 역사의 굴레 속에서 자신들의 삶보다는 자녀들의 삶을 일구기에도 바빠 역사를, 문화를 껴안고 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들의 삶에 과연 우리의 음식이 남아 있기나 했겠는가 말이다. 내가 이곳에서 바라본 그들의 삶 속에도 전통의 음식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이 원하는 가장 큰 것은 우리의 음식이었다.


우리 음식의 대표는 뭐니뭐니 해도 김치와 찌개, 그리고 떡이다. 그런데 난 하는 것보다 먹는 것이 우선이었던 사람, 내가 어찌 음식을 하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일단 큰 소리를 치고 본다. 그래 내가 다 가르쳐 줄게…. 뒷일은 그때 생각하자. 그리고는 일단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김치를 어찌 다 담글 수 있겠는가, 카페를 뒤졌다. 인터넷은 잘 활용하면 노다지다. 일단 전통음식을 만드는 카페에 도움을 받아 레시피를 다운받고, 시장으로 향했다. 중국시장, 일단 연길을 통해서 들어온 채소들이 잔뜩 있는 곳,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던 재료가 아닌 그야말로 중국재료이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다행인 것이 음식솜씨 좋은 어머니 덕에 기본은 준비되었다. 재료들을 사다가 집에서 담아보고, 먹어보고, 그렇게 몇 달을 혼자 음식 준비를 했다. 앞치마를 입고, 그리고 드디어 뚜껑을 연 날, 배추김치를 그것도 전라도식 통배추김치를 담았다. 러시아인들을 비롯해서 고려인들까지 20여명이 참석해서 함께 손에 배추를 버무렸다. 떡국도….


사람들은 너무도 좋아 했고 이제 매주 하잖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영사관과 한국교육원에서 적극적인 후원을 약속했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일을 해야 한다고…. 교무가 무슨 음식에 대한 준비만 하느냐겠지만 이곳 연해주 땅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우리의 문화를 전하는 일이다.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 그 가운데 4만에 이르는 고려인들 그들의 삶에 파고들기 위해 한국 교회가 무려 12개나 된다. 그렇게 많은 씨앗을 뿌리고 있는 가운데 난 혼자이다. 이제 온지 1년 밖에 안되는…, 그러나 그들은 나를 다 안다. 고려인들의 중심인 문화센터를 통째로 차지하고 우뚝 서 있는 나, 그 많은 선교사들이 이 곳에 그렇게도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했지만 종교를 앞세운 그들을 아무도 이곳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 난 아직은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이름이 교무님이다. 이름도 모르고 이름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내 이름이 교무님이다. 연해주의 모든 이들이 나를 교무님이라고 부른다.


이젠 문화센터 자원봉사자들도 내가 한국에서 직접 선택해야 한다. 러시아어를 몰라도 괜찮다. 그저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면 된다. 전망품에 대종사님께서 금강산의 주인을 찾을 때 우리 여기 있다 할 자격을 갖추라 하셨다. 그것이 준비라 하셨다. 다행이 우리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 덕에 이곳에서 문화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것을 대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줄을 나도 몰랐다.


고려인문화센터, 이제 시작을 해야 한다. 한국어 교실과 음식프로그램, 전래놀이와 한국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 어디 그 뿐이랴,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까지도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한국인의 뿌리로 자랑스럽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의 뒤에서 하나하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금은 비록 작고 초라한 일들일지라도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난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해 이 일들을 해 나갈 것이다. 이곳에 대종사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는 날까지 말이다.




(http://cafe.daum.net/20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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