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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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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진상 교무의 '우스리스크에 희망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러시아에 와서 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바쁘다는 말조차도 나에겐 사치일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다. 그러면서 러시아인들과, 혹은 고려인들과 줄타기를 해야했다. 때에 따라서 완벽한 러시아인으로 변해 버리는 고려인들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서도 많은 일들을 진행시켜야 하는 나로서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줄타기이다. 더욱이 종교까지 러시아정교회를 바탕으로 하는 이들은 자꾸만 나를 시험한다. 모든 일을 할 때마다 그들은 순간순간 박쥐처럼 변한다.


지난번 국악과 학생들 공연 때도 오히려 연해주 다른 도시에서는 우리를 환영하면서 한인회에서 다 준비하고 와줄 것을 요청했는데 우스리스크는 당연히 한국교육원에서 다 지원해 주는 것으로 알고 아무런 대책도 내 놓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공연을 준비하려면 엠프와 조명 시스템을 빌려야 하는데도 당연히 우리 측에서 해 주는 것으로 알고 배짱이었다. 결국 한국교육원에서 비용을 부담하고 공연을 했지만, 늘 이런 식이다.


이번 청소년들이 한국에 캠프를 가는 것도 그랬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너무도 고마워하고 감사하며 한국에 가는 것 자체를 기뻐했다. 그런데 도리어 고려인문화자치회의 임원 자녀들이 처음에는 서로 데려가 달라더니 막상 한국에 데려오니 배짱이다. 아예 국내에 핸드폰을 가져오게 해서는 실시간 중계방송을 한다. 캠프 기간 중에는 모든 참가자들의 전자기기들을 임시로 압수했는데 그걸 문제 삼아 캠프 자체를 흔들어 버릴 뻔 했다. 다른 나라에서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잘 수긍했고 규칙을 잘 지켰는데 유독 러시아 아이들만 아니 그들의 부모들만 프로그램 중에도 전화를 해 대는 바람에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리게 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온 아이들은 너무도 재미있어 하고 행복해 하면서 신나게 캠프에 참여했는데 한 두 아이들 때문에 캠프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릴 뻔 했다. 진행을 하는 우리들도 한계를 벗어난 부모들의 행동에 화가 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단다. 러시아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은 다른 종교에서도 하지 못한 일을 원불교는 어찌 저리 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난 조금 눈을 다른 데로 돌린 것 뿐인데,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하려 한 것 뿐인데, 어느 성직자는 고려인들에게 나와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한단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전통 공예 프로그램을 개설하면 선착순으로 학생을 받기 때문에 서로 일찍 신청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한인회에서는 부모들이 참여시키지 않겠단다. 이유가 내가 교무이기 때문이란다. 난 그냥 한국의 전통을 소개하려 한 것 뿐인데, 한인회가 사역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 보니 그럴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난 그들에게 종교문제를 거론한 적도 없고 내 종교로 옮기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먼 훗날을 생각해서 그저 여기저기 작은 돌들을 뿌리고자 하는 것 뿐인데, 왜 나를 자꾸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고려인들은 말끝마다 한국인들에게 속았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난 한번도 그런 일을 본적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지 정말 난감하다. 내가 움직이는 것은 원불교가 움직이는 것이고 또한 한국이 움직이는 것인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할텐데 어찌 한국인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것인가.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의 위상이 선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말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난 앞으로도 이곳에 오래 살아야 하는데 자꾸 내 마음을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어서 정말 힘에 겹다. 그래도 이런 난감한 곳이기에 더 대종사님의 회상이 자리를 잡아야하지 않을까 하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은 여러가지로 나를 시험하고, 지치게 하고, 주저앉게 만들지만 그래도 나만큼 이곳에 필요한 사람이 없다고 착각을 늘 하면서 다시 새로운 일들을 준비해 본다. 영사관과 한국교육원 그리고 고려인문화자치회와도 줄타기를 하면서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모든 일들을 준비해야하는데, 벌써 8월로 접어 든다. 이제 두달이면 겨울이 시작되는데 올 겨울은 몸도 마음도 또 얼마나 추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인지, 그래도 아자 아자 다시 힘을 내어 본다.


(http://cafe.daum.net/20081211)


후원계좌 / 국민은행 366-21-0033-180 예금주 이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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