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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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를 찾아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10.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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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울 속의 거울 / 이원성 , (안암교당 / 광운대학교 학생상담실 전임상담원)

처음 원불교상담연구회로부터 한울안신문에 3회에 걸친 ‘거울속의 거울’ 원고를 부탁 받았을 때는 나름 흔쾌히 수락하였다. 뭐 매주 마다 나가는 원고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쓰는 원고인데 내가 아는 마음공부와 상담에 대해서 써보면 되겠다는 마음과 원불교 상담연구회에 늘 지고 있었던 마음의 빚에 대한 보은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막상 원고청탁을 수락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에 이는 것은 3회에 걸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글로 독자들에게 어필을 쓸 수 있을까, 어떤 글을 쓰는 것이 읽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도 일었고, 더 나아가서는 평소에 원불교를 통해서 인연이 되어왔던 이들이 이 글을 읽고 나를 어떻게 보고 평가할까 하는 마음이 일면서 원고를 흔쾌히 수락할 때의 그 당당한 마음은 어디로 가고 조금씩 주변을 살피고 부담스러워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이렇게 마음이란 참 신기하고도 묘하다. 한 경계를 따라서는 보은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당당함이었다가 또 다른 경계를 만나서는 평가에 대한 부담감이 있으니 말이다.




필자는 대학 내 상담실에서 주로 대학생들의 진로, 성격, 대인관계, 취업, 학업 등을 상담하고 교육하는 심리상담 전문가이다. 학교 내 양호실이나 보건실이 있는 것은 다들 알지만 심리 및 정신건강과 관련된 상담실이 있다는 것은 생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요즘은 학생들에게 성격검사나 진로검사를 무료로 해주는 곳으로 홍보가 되어 찾아오는 학생들 수도 제법 많아졌지만, 정작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상담실 문턱을 넘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매일 다양한 학생들을 마음으로 만나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학생들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용기 내어 찾아온 학생들도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 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들을 찾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속에서도 이 일의 매력은 정말 변할 것 같지 않는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끼고, 그들의 눈빛과 행동들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면 희열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한 순간 변화를 하는 듯 했다가 다시금 뒷걸음치듯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하면 기뻤던 그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답답함과 조바심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과정들도 한 인간의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담자와 공감하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올 여름에 모 집단상담 전문가가 운영하는 감수성 훈련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를 하였다. 그 곳에서는 주로 감정을 서로 주고받는 훈련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상대와 나, 나아가서 집단전체와 서로 소통하는 것을 훈련한다.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그 안에서 해보려고 하면 말문이 막히고, 상대감정 뿐만 아니라 내 감정도 무엇인지 헤매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난다. 나름 상담전문가이고,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여하는 것이기에 첫날부터 멋지게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생각했지만 처참하게 무너졌다. 첫날 프로그램이 끝나고 함께 한 이들과 뒷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여전히 내가 뭐가 모자라고 부족한지에만 집중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다음 날 오후까지 전날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때마침 집단원 중에 한 분과 집단속에서 소통되지 않는 답답함을 나누게 되었다. 그 분은, 나 보다 연배도 많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감수성 훈련 경험도 있으신 분. 실제로 이런 나의 마음을 힘껏 공감해 주었고 어떤 조언이나 지도보다는 격려와 신뢰로서 믿음을 주었다. 잠깐의 마음 나눔 속에서 마음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30분 후 나는 집단 내에서 난생 처음으로 만세삼창을 하였고, 집단원 한 사람 한 사람뿐 만 아니라 집단 전체와 호흡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날 이후로 내가 달라졌다면 내담자를 대하는데 있어서 조언이나 지시보다는 공감과 격려 그리고 마음속 신뢰를 주는데 더욱 힘을 싣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보고 들으려고 노력을 한다. 또한 과거가 어떠하든 지금 여기서 느끼는 그들의 심정과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과 태도를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빈번히 조언이나 가이드도 하지만 그것을 받든 받지 않든 그 모든 것을 내담자의 몫으로 돌리려고 한다. 또한 상대의 입장이 아닌 내 입장에서 충고와 지도를 하려고 하면, 마음을 챙겨 상대의 입장에 서 있으려고 노력한다. 이러면서 점차 내담자와 심정적으로 가깝게 만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해되지 않는 내담자를 보면서 일었던 답답함과 짜증의 감정들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한결 수월하고 편안하게 내담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건 내담자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원불교를 만나서 몇 차례의 각성 체험도 있었고, 상담이나 마음공부를 하면서도 수차례의 의식의 정화와 확장과 같은 절정 체험도 있었다. 그 절정의 순간에는 내가 갑작스럽게 큰 존재로 변화가 되고 훌쩍 성장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현실 속으로 돌아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원위치로 돌아와 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하였다. 어쩌면 이러한 갈증들로 인해서 끊임없이 밖으로 향했던 것 같다. 마치 파랑새를 찾아 헤매던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속에서 한 단계씩 진화해 나가는 나를 발견하였다. 비단 이것은 나뿐 만 아니라 나를 만나는 내담자들도 그러한 것 같다. 때론 빠르게 때론 더딘 걸음 속에서도 변화와 성장이 있음을 발견하고, 신뢰하고 묵묵히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득하게만 보였던 그 곳에서 파랑새를 발견하고 함께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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