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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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정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10.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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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민 기자의 단어 너머 세상




누우면 천장이 당구 다…아니 축구장 푸른 잔디밭으로 보이던 2002 월드컵. 칭찬은 고…아니 오천만 붉은 악마를 청소케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 울트라스펙터클감동드라마였던 이탈리아전, 우리는 결국 역전했고(크~) 그 날 광화문이며 강남역이며 신촌은 ‘완전 깨끗’하셨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발 다 걷었던 것이다. 그 장면은 외신을 타고 국가 위상… 아놔, 모르겠다. 첫 패배한 독일전 끝나고 토사물 뒹굴고 쓰레기 흩날리던 광화문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이기면 치우고 지면 옛다 모르겠는 그 의식수준이 몹시 부끄러울 뿐 아니라 당최 잊을 수도 없었다.


보은장터 밤을 서대연이 지켰던 시절이 있었다. 몇겹씩 껴입고도 달달 떨고 있으면 선배들이 통닭이며 떡볶이 같은 구호물자를 투척해주셨다. 밤새 지키던(이라 쓰고 놀던, 이라 읽는다) 우리들은 해가 뜨면 회관 구석구석 숨어 잠을 잤다. 그 무시무시한 뒷정리가 남아있었다. 힘은 없지만 겁도 없는 나는 역시 짧은 치마에 하이힐 차림으로 종종종종 다다다다 뛰어다녔다. 선배들-교무님들로 이어진 검사를 받고 나야 교구에서 쏘는 고기를 아예 마시듯 꼴꼴꼴꼴 들이켰다. (당시 하숙생 비율로 보건대 차라리 도우미들 사서 쓰는 게 더 저렴했을 거임)


연극… 아니 장터가 끝날 무렵 ‘어둠을 헤치고 짐더미를 건너’오는 이들 있었으니 바로 서울교당과 안암교당 청년회였다. 천막 걷어 나르고 각종 박스들 올리고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7킬로 젓갈통 지하 창고에 쟁여넣기(요게 가장 빡셈). 꼬박 네 시간이었다.


찬란하고 황홀한 한 때가 지난 자리에 남아있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자기네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묵묵히 남아 정리해온 그들이었다. 땀 범벅에 검댕 잔뜩 묻혀가며 쓰레기 나르고 창고 정리하던 그들은 그날 밤 갈비라도 뜯었을까? 나는 쬐만한 거 몇 개 날랐다고 어깨가 다 아프던데, 힘들다 소리 한번 없이 생글생글 공심 펼치던 그들의 근육(받고 내친 김에 식스팩?)은 삐그덕 안대고 무사한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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