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진진삼매 , - 운문의 티끌 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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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진진삼매 , - 운문의 티끌 삼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4.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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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한 남자가 운문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진진삼매입니까?”


화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이지.”



진진삼매란 《화엄경》 제14권 현수품 게송에 “일체가 모두 자유 자재한 것은 부처의 화엄삼매 힘이다. 한 티끌 가운데 삼매에 들어가 일체의 티끌에서 선정(禪定)을 성취한다. 그러나 그 티끌은 또한 늘어나지도 않고 하나로서 널리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국토를 나툰다”라고 읊은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진진삼매는 화엄사상에서 주장하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사상을 토대로 한 말이라 합니다.


의상 스님의 ‘법성게(法性戒)’에도 이러한 화엄사상을 ‘한 티끌 그 가운데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일체의 모든 티끌 하나하나도 낱낱이 또한 이와 같다(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라고 읊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미진(一微塵)은 지극히 미세한 티끌을 말하며, 진진(塵塵)은 미세한 티끌 하나하나를 말합니다. 이 진진삼매의 화두는 화엄사상에서 주장하는 장단과 대소의 차별을 초월한 화엄법계의 연기(緣起)의 이치와 도리를 확실히 체득한 입장이 아니면 질문할 수도 없고, 또한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납승은 운문 화상에게 이렇게 어렵다는 화엄철학에서 설하는 사사무애의 이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런지요?


그 대답으로 운문은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이라고 아주 절묘한 대답을 했습니다. 발우 속의 밥, 물통 속의 물, 이 하찮은 것 같은 말속에 우주가 다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큰 집에서 호화롭게 살아도 잠잘 때는 한 평을 넘지 못합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하루에 세 끼 밖에 먹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옷이 많다한들 한 번에 한 벌 밖에 입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우리네 인생은 아주 작고 작은 것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한 그릇의 밥과 한 통의 물이면 살아가는데 족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우주인 것입니다.《화엄경》에 “한 티끌 속에 우주가 있다(一微塵中含十方)”는 말은 진실입니다. 높고 크고 많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작고 소박하며 별 볼일 없게 보이는 것에서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귀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 더군다나 이 나이쯤 되면 너무 많이 가지려고 애쓸 것이 없습니다. 조금만 욕심을 줄이고 집착을 버리면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가 없답니다.


그 옛날 중생일적에 너무 욕심이 많아 무리하게 움켜쥐려고 발버둥 쳤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물론 자신의 노력에도 달려있지만, 그건 오랜 전생부터 쌓아온 공덕이며 업보라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욕심을 내려놓으니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어느 교무님의 말씀을 빌면 “여의도교당에서 제일 팔자 좋은 영감은 김덕산인 것 같다.”라고 웃으십니다. 이제 작고 소박한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압니다. 제 능력에 시 한 수, 수필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고, 그리고 필자가 맡은 작은 일 하나하나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체력이 닿는 한, 세상을 위해 가진 것은 없어도 조금 밑지고 살고, 베풀고 살며, 발로 뛰는 삶을 인생표준으로 삼고자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인생이 이처럼 편안한 것을!



「바리때 속의 밥, 물통속의 물이라 하니/ 말 많은 중이라도 입을 열기 어렵게 되었네./ 북두성과 남극성은 있을 자리에 있는데/ 평지에서 물결이 일어 하늘까지 넘친다./ 헤아릴까 말까, 그만둘까 계속할까?/ 속옷도 없는 부잣집 아들 같은 놈이로다. 이 설두(雪竇) 화상의 송(頌)과 같이, 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스님들도 입을 열기 어렵다는 문제인데 공연히 입을 놀려 속옷도 못 입은 부잣집 아들놈 신세나 되지 않을 것인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원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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