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법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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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법문이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4.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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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11

대종사 영산으로부터 봉래정사에 돌아오사 한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영산에서 윤선(輪船)으로 이곳에 올 때에 바다 물을 보니 깊고 넓은지라 그 물을 낱낱이 되어 보았으며 고기 수도 낱낱이 헤어 보았노니, 그대도 혹 그 수를 알겠는가.」하신데, 그 사람이 말씀 뜻을 짐작하지 못하니라. (성리품 12장)



성리법문은 어렵습니다. 이른바 격외(格外)법문이기 때문에, 언어와 사고(思考)의 길을 끊어서 이치로는 다가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깨치는 지렛대이기도 합니다. 이 성리법문은 어느 시대나 구도수행자들에겐 늘 어려운 관문이지만, 그 본질을 알게 되면 실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생각으로, 뇌(腦)로, 이리저리 헤아려야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등록(傳燈錄)에는 「사자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사람에게 달려들고,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그 흙덩이를 쫓아간다. 獅子咬人 韓盧逐塊」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스승이 법문을 하면 어리석은 이는 그 말만 쫓아가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 말에 담긴 스승의 뜻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즉, 아무리 진실한 법문이라도 밖으로 그 상(相)에 끌리어 뜻을 취하면 범부(凡夫)이며, 안으로 상없는 자리에서 그 뜻을 얻어야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인은 성리법문에서 스승이 주는 말[언어]에 대한 주착에서 벗어나야할 뿐만 아니라, 자기 머릿속에 지닌 온갖 망념과 분별이 다 사라져야만 비로소 그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일체의 상(相)이 끊어진 자리에서 나타나는 무상대도(無上大道)의 참 소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격외법문을 대하면 흡사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그럴싸한 생각과 논리로 이런저런 답을 대보며 그 뜻을 맞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분별지(分別智)로는 아무리 애써도 진리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정작 마음 길이 완전히 끊어져서,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분별]이 막다른 절벽에 다다라, 더는 갈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자리에 이르러 참 지혜[공적영지]를 얻어야 비로소 불법의 참뜻을 깨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종사께서도 「불조(佛祖)의 천만경론은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하셨고(성리품 25장), 정산종사께서는 「있은즉 막히고 공한즉 통하며, 막힌즉 어둡고 통한즉 밝다.」고 하셨던 것이니(법훈편 72장), 위 법문들은 마음에 일체 상(相)이 멸하고 온갖 번뇌가 쉬어서 텅 비고 고요한 자리가 되어야 참 지혜[공적영지]가 나타나 일원의 진리에 이를 수 있음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리법문을 들으면,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일체가 돈공(頓空)한 자기의 본성(本性)을 곧바로 깨닫거나, 그렇지 않으면, 말에 끌리지도 말고 오직 텅 비고 밝으며 또한 바른[空圓正] 자신의 성품으로 즉시 돌이켜서[廻光返照], 상없는 자리에서 자신의 참 면목을 척 드러내보여야 올바른 답이며, 법문을 받드는 옳은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말과 생각이 많으면 도리어 진리와 만나지 못하고, 말과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네. 多言多慮 轉不相應 絶言絶慮 無處不通」(신심명)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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