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봄바람을 베듯이
상태바
마치 봄바람을 베듯이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5.02 0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12

중국 진(晉)나라 때 승조(僧肇: 374~414)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해서 남의 책을 베껴주는 서사가(書寫家)로 일했는데, 많은 책을 접하면서 자연히 경전과 고전에 널리 통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유마경(維摩經)을 읽고 환희심이 나서 불문에 귀의하였고, 스스로 구마라습(鳩摩羅什)을 찾아가 인도 대승불교를 공부했습니다. 그 뒤 구마라습이 왕명을 받고 불경의 대번역과 강술을 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논문집 조론(肇論)은 대승(大乘)의 공(空)사상에 대한 명저(名著)로 꼽히며 뒷날 중국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도 ‘불법연구회’ 당시엔 초기 ‘무시선법’ 원본에 조론(肇論)의 한 구절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31세의 나이에 법난(法難)을 당하여 억울하게 참수(斬首)되고 말았습니다. 승조스님은 처형을 당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사대(四大)는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五蘊)은 본래 공하다


흰 칼날에 머리를 내맡기니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네


四大元無主 五陰本來空 將頭臨白刃 猶如斬春風



고작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참수형을 앞두고 이처럼 태연자약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이 분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평안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배가 고프면 음식생각이 간절해지고, 몸이 아프면 어서 낫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지요. 그런데 젊은 나이에, 그것도 억울한 죽음 앞에서 저리도 태연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럴까요?


여기서 우리는 ‘마음의 힘’, 더 본질적으로는 진리에 대한 ‘깨침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저렇게 절망적인 순간에도, 사람은 자신의 참 성품을 깨치고 그 자리[空圓正]를 사용함으로써 저토록 의연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원효스님은 불법을 구하러 가다가 ‘일체유심조’를 깨치고는 아무런 미련없이 발길을 돌렸으며, 부처님께서는 사십이장경에서 「부처님 천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생사고락의 모든 차별법을 초월하여 닦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자성(自性)을 깨침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제11장).


따뜻한 봄을 맞아서 산으로 들로 나가고 싶은 계절입니다. 우리의 몸도 봄기운을 느끼며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은 오늘도 욕망과 집착의 울안에 갇혀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음의 자유가 없는 한, 내 몸이 구가하는 자유로움은 한낱 허수아비의 춤이며 호두껍질 속의 여유입니다. 곧 지나가버리고 말 이 화사한 봄날에, 저 승조스님의 시는 진정한 자유로움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