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0과 원불교 경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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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4.0과 원불교 경제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9.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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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강 / 조정제 , (분당교당, 수위단원)

최근 조선일보가 현시대 정책 패러다임의 대안으로 ‘자본주의 4.0’를 제시하고 이를 ‘따뜻한 자본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서 8·15 광복경축사를 통해 공생(共生)발전의 국정철학을 밝힘으로써 이 생경한 용어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자본주의 4.0’은 영국의 경제평론가 칼레츠키가 사용한 용어로서 자본주의의 발전 4단계를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1.0), 1930년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수정자본주의(2.0), 1970년대 말 시장의 자유를 강조한 신자유주의(3.0)에 이어 등장했다. 자본주의는 3.0 신자유주의 단계에 이르러 빈부격차의 심화라는 큰 약점을 드러내면서 이의 반성으로 따뜻한 자본주의를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전단계를 살펴보면, 4·19 혁명 이전은 자본주의 1.0, 군사정부의 경제계획 시대는 2.0이라 한다면,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규제개혁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3.0시대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자본주의의 기본 틀 속에서 사회주의 접목을 시도한 자본주의 4.0의 변형을 실험하였고, 이명박 정부는 친기업 정부로 출발하였으나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본주의 4.0의 한 형태인 공생발전을 국정철학으로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대국으로서 G-20에 듦으로서 선진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기업이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하였지만, 안으로 국내 중소기업은 대기업 앞에 옴짝달싹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노사갈등은 그치지 않고 국민의 삶은 제자리걸음이고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주도한 자본주의 1, 2, 3 시대가 그 소명을 다하였고 이제 자본주의 4.0이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틀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을 지키면서 거기에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껴안는 따뜻한 자본주의의 접목이 필요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개신교 윤리에 따라 근검하여 돈 벌고 이를 사회에 헌공하면 천국에 간다는 예정조화설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발전되었다고 보았다. 이 기독교 정신이 카네기, 록펠러, 빌게이츠 같은 거부들이 종신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문화를 자리 잡게 하였다.


불교는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행을 주창하지만, 원불교는 생활불교를 지향하고 자리이타를 강조하고 있다. 원불교의 경제관은 사요四要와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으로 특징지어지고 이것이 현시대에 거론되고 있는 자본주의 4.0의 처방을 전남 영광의 빈촌에서 소태산이 100년 전에 이미 천명한 것이어서 그 예지가 놀랍다.


사요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 교육, 공도자 숭배로 구성되어 있다. 원불교는 사회주의 같이 개인의 능력을 무시한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고른 개인의 능력 향상으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 틀 속에서 평등사회를 지향하려 한다. 그 방책으로 자력양성과 타자녀 교육을 제시한 것이다. 모두 다 스스로 자기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자력이 없어 교육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여 개인 능력의 격차를 줄여감으로써 평등사회의 이상을 실현하려 하였다. 가진 자건 갖지 못한 자건 사회출발 선상에서 나란히 서서 출발하게 하자는 영국의 확실한 출발(Sure Start) 또는 미국의 헤드 스타트(Head Start)정책이 진작 원불교 교전의 핵심 내용으로 담겨져 있으니 경이롭지 아니한가.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은 소태산 대각 후 최초로 설한 법문의 하나로서 약소국이 일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일제는 정당한 강자가 아니고 영원한 강자도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강자가 약자에게 강을 베풀 때에 자리이타(自利利他) 법을 써서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키는 것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이요, 약자는 강자를 대항만 하지 말고 강자를 선도자 삼아 배우고 서로 가르치며 진보 하는 길이 강자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자리이타는 두 가지 해석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되 남의 이익을 배려하라는 과정의 자리이타이고, 또 하나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여 돈을 벌고 남을 위하여 기부하라는 결과의 자리이타이다. 기독교형의 기부문화는 결과의 나눔이라 할 수 있으나 원불교의 자리이타는 여기에 과정의 공생을 추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결과의 나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앞으로 중소기업의 영역 존중, 약자 근로자의 껴안고 키워가기, 고객과 국민의 배려 등 과정의 자리이타에도 앞장 설 때에 자본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자본주의 4.0 시대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세제금융 지원을 통하여 새로운 토양을 마련해주고 기업이 스스로 자발적인 나눔에 앞장서게 하는 프로모터 구실을 충실히 할 때에 점진적으로 실현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글은 분당교당 법인절 행사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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