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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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황금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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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29

나라가 전쟁 따위로 극히 혼란스럽거나 경제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금을 사두려고 합니다. 나랏돈의 가치가 떨어져도 안전하고 언제든 재산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인류역사상 금처럼 널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물건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말에 있어서도 금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부인에게 있어서 경전 속의 금은 무엇일까요. 가령 최후까지 절대 버릴 수가 없는 것, 우리가 특히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가르침이 무엇일까요. 물론 저마다 소중히 여기는 가르침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우리 교전 속에서 공원정(空圓正) 법문을 꼽고 싶습니다. 이는 진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여 현상적(現象的)으로 쉽게 표현해주신 것으로써, 대종경 교의품 7장에 있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입니다.


공(空)은 텅 비고, 원(圓)은 두렷하고, 정(正)은 바르다는 뜻이지요. 공원정은 진리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지닌 자성(自性)의 모습입니다. 텅 비면 밝고 그와 동시에 바르다는 것입니다. 이 공원정은 삼학(三學)의 본질이고 사은(四恩)의 모습이며, 팔조(八條) 중 진행사조(進行四條)와 사요(四要)의 원동력입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은 공원정으로 해야 온전히 이루어지고, 무시선 무처선은 그대로 공원정의 실천수행이며, 동정일여 영육쌍전도 역시 공원정이어야 가능합니다. 그리하여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이 마침내 공원정으로써 모두 이루어집니다. 실로 이것이 없다면 모든 교리가 서지 못하고 일체의 신앙이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수행이 방편과 사도(邪道)로 떨어져서 진리에 나아가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해탈성불의 길과는 완전히 어긋납니다. 이제 지루한 이론은 그만하고 실제의 예를 보겠습니다.


가령 누군가와 싸웠습니다. 그가 아주 밉습니다. 진심(瞋心)이 나서 가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깜박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부산하게 뛰어갑니다. 일을 다해놓고 문득 아까 싸웠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일하던 동안 진심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즉 경계(싸웠던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더니 진심의 체성(體性)이 공하여 그 자리에 저절로 혜가 있어 일을 온전히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 안의 공(空)과 원(圓)과 정(正)을 함께 쓴 경우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처럼 자신도 몰래 자성의 원리를 씁니다. 그리고 수행이 깊어지면 경계에 제 힘으로 공원정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평소에 너무도 갖고 싶은 가방이 있었습니다. 경제적 여유만 생기면 꼭 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가까운 인연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득 삶이 허무해집니다. 갑자기 자기의 물질적 욕망이 사치스럽게 보입니다. 다시 보니 지금 있는 가방도 유행이 지났을 뿐 나에겐 좋은 가방입니다. 새삼 물건의 가치가 오롯이 눈에 보입니다. 탐욕이라는 것도 이렇습니다. 그것에 대한 분별 주착이 사라지면 탐욕도 사라집니다. 탐욕의 체성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주착이 사라진 자리에 절로 혜가 나타나 평범한 것의 가치가 새롭게 보입니다. 그래서 물질생활이 바르게 됩니다. 이것이 공과 원과 정이 함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중생이라 해서 삼독에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탓하며 쉽게 포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텅 비면 두렷하고 또 올바르게 이루어지는 공원정은 누구나 가진 ‘마음의 본질’로서 부처와 범부가 다 같습니다. 그래서 교전 교리도의 맨 윗자리에 ‘일원(一圓)은 일체중생의 본성’이라 하신 것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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