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가지 만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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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가지 만 잎사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0.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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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32

「천 가지 만 잎사귀 얼기 설기 얽혔으나 / 파헤쳐 들어가면 그 근본은 뿌리 하나 / 우주의 삼라만상 여기저기 벌였으나 / 간추려 들어가면 영명하온 기운 하나」 《성리의 노래》



지난 봄에 누이에게서 ‘스킨리’라는 식물의 줄기를 얻어왔습니다. 이 식물은 조그만 통에 물을 넣고 그 줄기를 담가두면 며칠 지나 물속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래서 벽 위에 걸어두었더니 삭막한 시멘트벽에 파란 생명의 기운을 전해줍니다.


무릇 식물이란 뿌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식물의 뿌리는 곧 생명(生命)과 같습니다. 만약 어디로 옮길 때는 그 뿌리만 옮겨 심으면 줄기와 잎사귀 등 나머지는 저절로 생깁니다. 생명의 근원인 뿌리만 잘 살아있으면 겉보기에 비록 시들었더라도 반드시 다시 소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전에는 법문이 많습니다. 물론 불교의 팔만사천법문보다야 훨씬 적지만, 보통사람들이 머릿속에 다 담고 있기에는 많은 분량이지요. 그런데 혹 누군가가 교전의 법문을 모두 외우고 있다할지라도, 일상에서 어떤 경계를 만난 순간, 그와 관련된 법문을 바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 천만경계에 일일이 대처하려해도 각각 그 해당법문을 찾으려하면 이미 때를 놓치기 쉽다는 이야기지요.


때문에 순간순간 마주치는 무수한 경계는, 실제로 그 해법을 일일이 외우고 있기보다는 가르침의 ‘원액(原液)’을 지니고 있다가 필요할 때 즉시 그것을 풀어쓰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법문의 원액, 교리(敎理)의 정수(精髓)가 곧 성리(性理)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종교의 문에 성리를 밝힌 바가 없으면 이는 원만한 도가 아니니, 성리는 모든 법의 조종(祖宗)이 되고 모든 이치의 바탕이 되는 까닭이니라”하셨습니다. 성리가 곧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며 일체 법문의 중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의 성가가사처럼 무수한 법문이 천 가지 만 잎사귀(千枝萬葉)라면, 성리는 곧 그 뿌리입니다. 때문에 이 뿌리가 되는 것 - 그 ‘하나’를 알아야 비로소 일체법문의 핵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의 내용(성리)은 대체 무엇일까요? 바로 소태산대종사께서 설하신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도입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진공과 묘유입니다. (이 둘도 하나입니다.) 또한 정·혜·계, 즉 공원정(空圓正)입니다. (이 셋도 하나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그 실체가 하나인데, 이름만 달리하여 여러 각도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리의 세계에 들기 위해서 하는 공부를 수도(修道)라고 합니다. 이 수도란 어렵게 보면 한량없으나, 간단히 말하자면 ‘마음이 요란하고 어리석고 그르지 않게 하는 것’이며, 더 쉽게 말하면 ‘마음을 텅 비워서[空] 공적영지가 나타나게 하여[圓] 모든 행이 절로 바르게[正]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주만유가 이러한 원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우주자연의 도라고 하며, 사람이 이 원리를 몸과 마음에 그대로[空圓正] 갖추어 쓰면 곧 불보살입니다. 또한 우리교전에서 바로 이와 같이 마음과 몸을 작용하라고 가르쳐주신 공부법이 곧 무시선법(無時禪法)이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분별주착이 없는 마음’ 혹은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것이고, 더 간단하게는 동정간(動靜間)에 마음을 항상 ‘적적성성하게’ 지니라는 것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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