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처불상 사사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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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처불상 사사불공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0.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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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33

우리 교전 맨 앞에는 원불교의 네 가지 큰 가르침이 걸려있습니다. 바로 4대 교리표어입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처처불상 사사불공’입니다. 우리 원불교의 교리는 신앙문과 수행문으로 짜여있기 때문에 이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가르침은 곧 신앙문의 핵심줄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치는 실제적인 문제는, 이 법문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곳곳이 부처님, 일마다 불공’이라는 가르침은 매우 쉽고 간결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실천해내기는 참으로 어려운 법문입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일체 모든 것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없이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아마도 가장 큰 문제일 것 같습니다.


대체로 볼 때, 불법을 오래 공부했다하더라도 ‘처처불상’이라는 법문은 이론적으론 대략 이해되어도, 가슴으로부터는 그대로 잘 느껴지지 않는 괴리(乖離)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깊은 신심으로써, “일체 만물이 다 부처”라는 생각을 마음에 자주 되새기며 이 가르침을 철저히 믿어 의심치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주위사람과 사물이 모두 부처님으로 보인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실제로 그리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처님’을 보려는 순간엔 반드시 그와 차별되는 ‘중생’도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약 누군가를 ‘부처님’으로 보게 된다면, 그 마음속에는 당연히 그 ‘부처님’과 반대되는 상(相)도 함께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부처님은 ‘존귀하다’는 생각과 그와 반대로 중생은 ‘하찮다’는 관념을 동시에 갖지 않으면 결코 ‘부처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삼라만상을 모두 ‘부처님’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둥글다’고 생각한다는 것처럼 실로 비현실적인 노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처처불상’의 가르침을 터득하려고 하면 단지 ‘생각’이나 ‘의지’로써 그렇게 믿으려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곧, ‘부처와 중생’도 없고 ‘귀함과 천함’도 없는 우리 본연의 성품(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 사물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분별과 주착이 끊어진 그 마음에서는 일체의 ‘삿된 차별’이 일지 않아서,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하고, 들리는 것이 다 참다운 소리여서, 일부러 구분치 않아도 저절로 부처의 모습이며 다함없는 진리의 법음(法音)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처처불상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처처불상’의 위대한 법문을 생각이나 믿음으로 찾아서 이루려고 하는 대신, 우리 ‘일원상의 진리’를 따라서, 공원정(空圓正)의 원리를 따라 그 가르침을 체감하고 가슴으로 느끼려고 하는 것이 진실로 소태산대종사님의 제자이며 올바른 공부인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불공’이란 일에 있어서 바로 이러한 마음상태를 지니고 행하는 것으로써, 일체의 삿된 분별이 없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침[偏着]도 없어서, 저절로 참되고 바르게 나투어지는 몸과 마음의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처처불상’과 ‘사사불공’은 각각 따로 나누어지지 않으며, 이 둘은 반드시 함께 이루어지는 공부로써, 신앙의 근간(根幹)인 동시에 수행의 전부(全部)이기도 한 것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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