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내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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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내 안에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1.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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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35

한(韓)나라 소(昭)왕이 어느 날 술에 취해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러자 모자를 담당하는 전관(典冠)이 임금이 추울까봐 겉옷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이윽고 소왕이 잠에서 깬 뒤 신하들에게 누가 자기에게 옷을 덮어주었는지 물었다.


“전관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소왕은 도리어 그 전관(典冠)과 옷을 담당하는 전의(典衣)를 함께 처벌했다.


“전의는 제 직분을 소홀히 했고, 전관은 주어진 직책으로부터 월권(越權)을 했으니, 둘 다 처벌받아야 마땅하다.”《韓非子》


어느 날 자로(子路)가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옳은 말을 들으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까?”


“부모와 형이 계시는데 어찌 곧바로 실행하겠느냐?”


염유가 질문을 하였다.


“옳은 말을 들으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까?”


“들으면 곧바로 실행하라.”


옆에서 듣고 있던 공서화(公西華)가 물었다.


“자로에게는 부모, 형과 상의하라 하시고 염유에게는 곧 행하라고 하시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염유는 소극적이기에 나아가도록 한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므로 물러나도록 한 것이다.”《논어》



어떤 한 가지 일에 대한 올바른 처사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그 일에 올바른 대응이 될까요. 흔히 우리는 각 경계마다 올바른 답이 반드시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일수록 언제나 그 ‘하나’의 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쥐어짭니다.


위에서 만약 소왕이 전관(典冠)에게 “직분을 초월해서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구나”하고 칭찬했다면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또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옳은 말을 들었을 때는 어김없이 곧 행하라”하고 일렀다면 틀린 가르침이었을까요.


사실 삶에서 기계적이고 관념적으로 시비선악(是非善惡)을 구분하는 게 퍽 무리일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너그럽게, 또 때로는 과단성 있게 해야 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계 때마다 하나하나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것은 말로는 간단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요훈품 제7장에서 “큰 도를 닦는 사람은 정과 혜를 같이 운전하되, 정 위에 혜를 세워 참 지혜를 얻는다”고 하셨지요. 또 대종경 선외록(選外錄)에는 더 구체적으로 “큰 도를 닦는 이는 정과 혜를 같이 운전하여야 되나, 항시 정(定) 위에 혜(慧)라야 참 혜가 된다”(제8장 10절)고 하셨습니다.


위 법문은 고요함 속에 나타나는 지혜, 즉 공적영지가 참 지혜라는 말씀입니다. 이 지혜는 누구든 공적하면 그 가운데서 다 나오는 것이라, 선문(禪門)에선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 제일 요체(要諦)가 되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定)에 들면 혜(慧)가 떠서 계(戒)를 지키게 되는 것이지요. 때문에 신라 원효스님은 “한 마음이 지극히 맑고 고요해서 저절로 행해지는 것이 계(戒)”라고 했습니다.


삶의 중요한 경계일수록 머리를 짜내려 말고, ‘진공[空寂]이 곧 묘유[靈知]’라는 일원의 진리에 따라 참 답을 얻는 것이 불법을 쓸 줄 아는 공부인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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