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틀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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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틀이 무너진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1.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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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38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는 서양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불교의 교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불교수행법에 대한 관심으로 불교를 찾는다고 합니다. 고도의 물질문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기의 고뇌를 덜기 위한 방법으로 점차 선(禪)과 같은 불교수행에 심취하고 있어서, 전통적으로 신앙을 중시해온 종교문화가 큰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단도 지난 달 미주총부 원다르마센터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센터이사장인 백상원 교무님은 올봄에 “아마도 10년쯤 지나면 미국사회에서 종교의 틀이 무너질 것 같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이는 과거와 같은 신앙위주의 종교가 쇠퇴한다는 것으로서,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는 아마도 훨씬 더 번창할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란 말은 사실(事實)을 모를 때 쓰는 용어지요. 그런데 과학과 더불어 인지가 급속히 발달한 현대에선 과거에 몰랐던 많은 것들이 밝혀져서 이젠 ‘믿어야만’하는 영역이 점차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도 이젠 믿음을 넘어서 크든 작든 ‘진리’를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생활화하는 공부가 더 중요한 시대에 와 있습니다.


우리 원불교는 신앙과 수행을 함께 하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즉, 사은사요로써 ‘처처불상 사사불공’에 이르는 것이 신앙이고, 삼학팔조로써 ‘무시선 무처선’에 이르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란 내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업(業)을 쌓느냐’에 달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는 결국 수행과 관련된 것이며, 믿음은 수행을 잘 하기 위한 전제조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수행할 때는 절로 신앙을 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수행에 있어서 정신수양을 잘하면 잡념과 집착이 사라져 저절로 욕심이 줄게 되고, 그래서 모든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솟아납니다.


그리고 사리연구와 작업취사를 잘 하면 일과 이치를 잘 배우고 깨달아서 일을 당하여 어리석거나 주저함이 없이, 바르고 지혜롭게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사은사요의 실천이며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도리입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무시선 무처선을 닦아서 삼학병진을 해나가면 위와 같은 것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저절로 실행이 됩니다. 즉, 텅 비고 고요한 마음자리에 밝고 두렷한 자성의 혜광이 빛나서 의도하지 않아도 스스로 참되고 바른 행이 나투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는 온 천지가 모두 은혜의 덩어리가 되고 온 세계가 다 남음도 모자람도 없는 부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따로 애써서 믿거나 다짐할 것도 없이, 저절로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이루어집니다.


서양인들이 기독교에서 멀어지는 것은 믿음과 기도만을 유난히 강조하는 교화방식이 고도로 진보하는 과학문명세계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과보응의 진리는 사람이 믿든 안 믿든 그 행위의 결과는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는 것이지요. 때문에 자기마음을 깨치고 다스려서 혜복을 얻는 불교적 수행법이, 믿음과 기도가 다인 양 내세우는 것보다 더 진리적이고 타당한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십자가, 불상 또는 일원상을 향한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표방하는 당처(실지)불공이라는 위대한 교리가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수행을 중심으로 신앙을 아우르는 지극히 과학적이며 진리적인, 효과만점의 교화수단입니다.


교단 100주년을 앞두고 교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지난 수십 년간 우리교화가 침체되어온 원인이 무엇인지를 아프게 짚어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교단의 재정이나 교화의지 또는 교도들의 지적수준이 부족하여 교화가 뒤쳐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진리수행엔 소홀하면서 믿음과 기도와 교리지식만으로 교화를 기대하는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당마다 교도들의 평균연령이 높고 젊은 교도들이 뒤를 잇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젊은 지식층들이 수행을 위해 불교에 계속 찾아들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반성할 때가 되었습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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