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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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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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40

경청(鏡淸: 868~937)선사가 한 제자에게 물었다.


“문 밖에서 나는 소리가 무엇인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경청선사가 말했다.


“너는 빗방울 소리에 사로잡혀 있구나.”


제자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저 소리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하마터면 나도 사로잡힐 뻔 했구나.”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일상수행의 요법 제1조입니다. 이 조항은 우리 모두 수행으로써 자성의 정(定)을 얻도록 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위 법문을 종종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으나 ‘경계를 대하면’ ‘반드시’ 요란함이 있게 된다고 풀이하는 것입니다. (‘있어진다’는 요즘 말로는 ‘있게 된다’ 또는 ‘생긴다’ 입니다.) 즉, 심지가 요란하게 되는 것은 ‘경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위 구절의 뜻이 그와 같다면, 부처와 성인의 심지도 ‘경계를 대하면’ ‘반드시’ 요란함이 있어져야 (요란하게 되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경계에 따라 요란해지는 심지를 가진 이가 과연 부처나 성인일 수 있을까요.


사실, 심지가 요란하게 된다는 것은 심지의 본래 모습인 공적(空寂)함을 벗어났다는 것이며, 이는 바로 경계에 끌려서 주착(住着)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다’는 ‘심지가 요란하지 않음이 자성의 정(心地無亂自性定)’이라는 육조 혜능스님의 말에서 온 것으로, ‘원래 분별주착이 없는 각자의 공적한 성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의 마음이 안팎의 경계에 끌려 주착함으로써 그 공적한 성품을 벗어나서 ‘요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때문에 ‘경계를 따라 요란함이 있어지는’ 마음은 중생의 마음인 것이며, 부처와 성인도 그렇다고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즉 “심지는 본래 공적하여 티끌만큼도 요란함이 없으나, 중생이 내외경계에 주착하여 망상분별을 내므로 그 본 모습을 벗어나서 심지에 요란함이 생긴다.”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생의 마음은 자기 본래의 공적(空寂)함을 벗어나 경계[六境]에 끊임없이 집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든 마음이 경계에 끌려가지 않으면 결코 요란함이 생기지 않으니, 이는 제불제성의 마음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횡단보도에 서서 상대편 사람들을 바라볼 때, 좋아하는 마음도 싫어하는 마음도 없으면, 눈앞의 경계에 조금도 주착하는 바가 없어서, 마음에 전혀 요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음이 거기에 끌려가면 어떻습니까? 마음이 곧 요동하게 됩니다.)


어디선가 잘 모르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만약 그것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면, 그 소리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아서, 마음에 조금도 요란함이 일지 않지요. (그런데 만약 그것이 자기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악이라면 어떤가요? 그 소리에 주착하여 마음에 요란함이 생기게 됩니다.)


그냥 평상복을 입고 있을 때, 그 옷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면, 옷에 아무런 집착이 없어서 마음이 전혀 요란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옷을 입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을 때는 어떨까요? 남의 작은 시선에도 마음이 금방 요란해집니다.)


이처럼 마음이란 ‘경계에 끌려 주착되었을 때’ 요란함이 생기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결코 요란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때문에 일상수행의 요법 제1조는, 경계에 주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자성의 본래 공적한 모습을 지키자는 것으로써, 이것이 곧 ‘자성의 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앞서 경청선사는 제자에게 빗방울 소리에 ‘사로잡혔다’거나 ‘하마터면 사로잡힐 뻔 했다’고 했습니다. 어디서든 바른 삼학수행으로 자성의 정(定)을 체험한 이라면, 그 말뜻을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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