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뒷모습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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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뒷모습만 봐도'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2.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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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울봉공회 가정파견봉사이야기 끝



한달에 두 번 어려운 가정을 직접 찾아 청소며 빨래, 목욕, 말벗 등을 해드리고 오는 일. ‘가정파견봉사활동’의 의미란 이토록 간단하지만, 원봉공회에서 서울교구봉공회로 이어지는 9년 역사란 오랜 해송 껍질 사이사이 배어있는 짠내와 바닷바람과 햇살의 흔적처럼 기쁨과 슬픔, 눈물과 웃음들이 깊게 새겨져 있다. 공심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봉공회원이지만, 수십명의 가정봉사원 교육 이수자 중 이제는 채 몇 명 남지 않았을 정도로 쉽지 않은 가정파견봉사.


“열이면 아홉은 첫 날 다 토악질을 해요. 곰팡이와 지린내가 문 여는 순간 확 오거든. 들어갈래도 안 들어가지는 거야. 특히 겨울에는 어르신들 추우시니까 환기도 오래 못 시키죠.”


대부분 방 밖으로 나와 공동 화장실을 이용해야하는 쪽방촌. 그러다보니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요강 하나나 현관, 심지어 누워있는 이불 바로 옆에 용변을 보기도 한다. 하루고 일주일이고, 내다 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있는 게 독거 어르신들의 노년이다.


“나와서 화장실 가시라고 목에 열쇠 걸어드리면서 큰 소리로 말씀 드리잖아요. 그렇게 소리를 높이다가 보면 진짜 화도 나요. 나 한번 못 오면 어떡하려구,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죠. 그러다가도 청소하고 빨래에 목욕까지 하고 나면 ‘아유, 얼마나 시원하실까’ 하면서 아기처럼 순해진 얼굴 보고 다시 웃고, 그러는 거죠.”


제대로 체 잡기도 힘들지만, 일단 하다보면 쉬거나 그만 두기는 더 어려운 가정파견봉사. 몇 년이고 꾸준히 해온 봉공회원들이 큰 존경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정작 겸손해지는 것은 이 덕분이다. 멀리 살며 돌아보지 않는 친자식·친형제보다 더 가깝고 살가운 가족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보통 독거어르신들 댁에 가게 되는데, 저는 장애 아들들이 있는 할머니 댁이었어요. 아홉명의 자제분들 중에 두 분이 지체장애인데, 할머니 혼자 두 아들을 데리고 살고 계셨지요.”


폐지줍기나 날품팔이를 하던 할머니의 수입으로 근근히 먹고 살던 이 집. 얼마 안 가 할머니가 계단에서 주저앉아 대퇴부가 파열된 후 침상생활을 하면서 김동연 봉공회원(불광교당)의 발은 더욱 빨라지고 손은 더욱 무거워졌다.


“지체가 있는 둘째 아드님이 영수씨인데, 콩나물 무침을 좋아해요. 형님은 고등어를, 어머님은 두부를 좋아하시죠. 영수씨네 가는 날은 아침부터 장에서 재료를 사서는 가서 밥부터 해요. 식구들 식사하시는 동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다 드시면 반찬 담고 설거지 해놓고 나오죠.”


딸이며 누나, 여동생이자 엄마였던 김동연 교도는 사정상 할머니가 열반한 뒤 한달만에 영수씨네를 찾았다. 누구보다도 그녀를 따랐던 영수씨가 벙싯벙싯 웃으며 ‘엄마 죽으면 안 올까봐 걱정 했다’고 마음을 놓았다. 이제는 제법, 그녀를 보면 어설프게나마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영수씨, 이제 김동연 교도가 걱정하는 것은 ‘엄마 보러 간다’며 아침저녁도 없이 국립현충원을 찾는 영수씨의 안전이다. 비슷한 뒷모습만 봐도 혹시 영수씨일까 걱정되는 그녀의 마음. 그것이 바로 봉공회가 이어온 가정파견봉사활동의 진정성이다.


봉사 문의 · 02-812-6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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