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 , 연구 , 취사와 자성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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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 연구 , 취사와 자성삼학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3.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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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55

자성의 ‘정·혜·계’와 ‘수양 연구 취사’의 가장 큰 차이는, 자성삼학은 셋을 동시에 닦는 공부이고, 수양·연구·취사는 각각 독립적으로 하나씩 닦아가는 공부라는 점입니다.


그럼 예로부터 불교에 자성삼학이 있는데 대종사께서는 왜 ‘수양·연구·취사’의 교법을 굳이 새로 내셨을까요. 아마도 자성[定慧戒]의 원리인 공원정(空圓正)은 일반인들로선 이해하기가 어려운 반면, ‘수양·연구·취사’로 나누게 되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누구나 공부할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리 하시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수양·연구·취사’는 각각 그 특징이 뚜렷하여 일반대중을 제도하는 데 좋은 점이 많습니다. 우선, 좌선과 염불 등으로써 수양을 하게 함으로써, 예를 들어 성질이 급하거나 들뜨거나 혹은 망상이 많은 이들에게 차분한 마음을 기르도록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전공부·강연·회화·정기일기로는 사리를 밝게 아는 공부를, 의두와 성리공부로는 자성의 이치 밝혀 진리를 깨치게 함으로써, 견성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알음알이도 함께 얻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유무념 공부와 상시일기를 통해서 취사하게 함으로써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훈련을 하여 모든 사람이 진급하는 삶을 살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성의 ‘정·혜·계’ 삼학이 진리에 바로 들고 바로 행하는 수행법이라면, ‘수양·연구·취사’ 삼학은 우선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지식과 지혜를 닦으며, 시비와 선악을 잘 구별하여 바르게 행하도록 하기 위한 현실적인 수요(需要)에 맞춘 가르침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은 우리의 이성을 바탕으로 한 이성(理性)삼학, 누구나 쉽게 마음공부에 접근할 수 있는 대중(大衆)삼학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로써 보다 이해하기 쉬운 개념에, 지적(知的) 탐구라는 현실적 요소를 가미한 대중적인 수행법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수양 연구·취사’와 자성삼학의 두 번째 큰 차이점입니다.


그런데 수행인이라면 여기서 그냥 지나쳐선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무릇 마음공부라는 것은 모두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 - 즉 공원정(空圓正)이 표준이어야 하므로,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에 있어서도 그 궁극적인 공부표준은 반드시 ‘자성의 정·혜·계’에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되어야 두 삼학이 서로 보완적으로 상 중 하근기의 중생들을 모두 빠짐없이 거두어 불보살의 문에 들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습니다.



1. 정신수양


공적함[定] 속에 반드시 영지[慧]가 나타나도록 공부해야 합니다. 만약 공적하기만 하면 곧 무기(無記)에 떨어지게 되며, 또한 가만히 있을 땐 잘 되는 것 같아도 경계를 대하면 곧 공적(空寂)이 깨져서, 생활 속에선 활용하지 못하는 죽은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2. 사리연구


견성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소한 알음알이는 늘겠지만 모든 사리의 중심 되는 이치[眞理]를 모르기 때문에 노력에 비해 소득이 적을 것입니다. 또한 개별적인 알음알이에 너무 치우치면 분별망상이 치성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므로, 되레 공부의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3. 작업취사


가장 올바른 취사는 무분별지(無分別智) - 즉 공적영지에 의한 행위입니다. 일에 주착(住着)하여 분별심으로써 하는 행위는 한쪽으로 기울어 바른 취사가 될 수 없으며, 시비선악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에 애증(愛憎)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계에 대한 집착과 속박으로 인해 마음의 자유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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