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소통과 '언어도단'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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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소통과 '언어도단'의 자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4.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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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56

사람 사는 세상은 말이 통해야 살맛이 납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나서 결국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요. 그렇게 되면 야생동물의 세계와 별로 다를 게 없어집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언어로써 논리적으로 소통할 줄 알고 합리적으로 결론을 낼 줄 아는 지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힘센 놈이 왕이 되어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만으로 움직이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도덕과 법을 만들어내고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만든 것이 인간입니다. 사람에게 자기의 뜻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언어의 기능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문명사회는 나타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옛날 그리스 시대엔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의해서 놀랄 만큼 민주주의가 발달했고, 반면에 독재자가 대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시대는 언제나 사람들의 입을 막는 강압적인 사회였습니다. 때문에 자유로운 언어소통 여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가장 손쉬운 척도라 해도 될 것입니다.



허나 세상엔 대중의 입을 막고 여론을 오도하며 제 이익만을 지키려는 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저 권력자의 도구가 되어 국민들에게 해를 입히고도 끝끝내 사실을 왜곡하는 관료들, 임명권자에게 잘 보이려고 정권에 불리한 진실보도를 막는 언론사사람들, 엘리트의식에 빠져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나눠먹기식 결정을 하거나 서로서로 봐주는 입법부와 사법부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과거로 치면 귀족계급으로서, 자신들이 국민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대중들의 눈과 입을 막으며 그 위에 앉아서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른바 국민의 공복(公僕)을 뽑는다는 선거를 아무리 치러도 또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귀족이 되어 권력을 사유화하려드니, 바른 지도자를 뽑는 안목이 부족하면 억울해도 그 뒷감당은 백성들이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힘없고 약한 국민들만 너무 착해서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이나 고향사람이라서, 또는 같은 학교출신이나 종교가 같아서, 비합리적인 줄 알면서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며 그쪽 편을 들어줍니다. 이것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고 이성과 민주적 사고도 그 앞에선 자취를 감춥니다. 다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이 불공정하다해도 도무지 남 탓으로 돌리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와 ‘말이 통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실 말이란 끼리끼리보다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잘 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깥과 잘 통하려면 말에 진심이 담겨있어야 하고 말하는 내용이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헌데 사람이 많이 배웠든 안 배웠든 이러한 말들은 소위 이성(理性)보다는 그보다 더 안쪽에 있는 자성(自性)에서 나옵니다. 이성은 시비선악을 분별심(分別心)으로 가리지만, 자성은 분별치 않아도 저절로 아는 우주자연의 도(道)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참되고 합리적인 언어는 자성이라는 ‘언어도단’의 자리에서, 부러 만들거나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튀어나오는 혜(慧)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누가 되었든 가장 진실한 말은 시비이해에 대한 집착을 떠나 ‘말길이 끊어진 자리’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사람을 다스리려는 지도자나, 마음을 공부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이 능력을 꼭 체험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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