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에서도 바람소리가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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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에서도 바람소리가 느껴져요'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5.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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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 칼럼 / 노현성 교무 , (종로교당)

어린시절,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성극을 준비하는 모임에 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인 즉 병에 걸린 임금님이 배추 밑동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 건강을 회복해 요리사에게 상을 내리려는데, 그 요리사는 신선한 배추를 공급해 준 배추장수에게 공을 돌리고, 배추장수는 다시 농부에게, 농부는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도와준 천지자연에게 공을 돌려, 결국 사은의 공덕으로 임금님이 병이 낫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얼마나 크게 뜨고 그 보이지 않는 관계를 알아야, 우주 만유의 모든 관계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임을 자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천지와 부모와 동포와 법률에서 은혜 입은 내역을 깊이 느끼고 알아서 그 피은의 도를 체받아 보은행을 하는 동시에 원망할 일이 있더라도 먼저 모든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원망할 일을 감사함으로써 그 은혜를 보답하자는 것” 이라는 ‘지은보은’ 법문이 있습니다. 원불교 가르침의 큰 강령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 어머니께서는 집 근처 노숙인 아저씨에게 가끔씩 밥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어렸던 내가 ‘왜, 거지에게 밥을 주시느냐’고 물으면, ‘다 너 잘되라고, 너를 위해 그런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랑 아무 상관없는, 그것도 거지에게 밥 한끼 대접하는 것이 도대체 왜 나를 위하는 일이 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품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답은 시간이 흘러 출가를 하고 전무출신이 되고 나서야 풀렸습니다. 대종사님의 가르침 중, ‘사은’을 접하고 나서입니다. 진리의 내역을 사은 곧 천지·부모·동포·법률로 밝혀주시고, 더 나아가 금수초목과 미물곤충까지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임을 알게 해주신 가르침이, 저와 제 가족만이 전부였던 어린 제게 더 넓은 품과 세상을 자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살지만 그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을 모르고 사는 것 같이, 우리들은 사은의 은혜 속에 살아 왔고, 현재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가지만, 그 큰 은혜를 잊은 채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5월이 되면, 더욱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까운 부모님이나 스승님은 날을 정하여 그 은혜를 잊지 않도록 애를 쓰고 공력을 들입니다. 하지만 물고기에게 물과 같은 정작 큰 은혜(大恩)는 잊고 살기 십상입니다.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모두 감사할 은혜인데, 오죽 원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우셨으면 사은(지은보은)의 가르침을 내 주셨을까요. 우리 공부인들은 부모와 스승에게 한정지어 약간의 도리를 하고 의무를 다한 사람인양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은혜 더 넓은 은혜에 대한 보은의 마음과 보은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월, 눈에 보이는 은혜 충만한 달, 하지만 정작 우리가 눈 떠야할 은혜는, 일체 만물이 진리의 공물이고 사은의 공물이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은혜를 나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날 저의 어머니께서,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거지에게 밥을 주셨던 무언의 가르침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청년들과 법회를 보고 교당에서 밥을 먹는데, 한 청년이 밥알 한 톨도 놓치지 않고 맛있게 먹으면서, “교무님, 이 한 톨의 쌀에서도 비와 바람소리, 농부 아저씨의 정성과 택배 아저씨의 땀 냄새가 느껴져요”라고 합니다. 같이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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