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그 끝없는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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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그 끝없는 사랑에 대하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6.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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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권도갑 교무의 시대공감, 생생토크

자식이 평생 효를 다 해도 갚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부모를 봉양하고 노후를 함께 보내야 한다는 통념이 바뀌고 효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모님의 사랑이란 무엇이며 진정한 효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원불교에서는 부모를 신앙으로 극진히 모시게 합니다. 경전에 보면 부모가 아니면 이 몸을 나타나지 못하고 길러지지 못한다면 그 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오. 라고 하시고 부모를 잘 모시면 세상이 자연히 나를 위하고 귀하게 알 것이요 나의 자손도 나에게 마땅히 효한다고 하셨습니다. 천도법문에서는 부모는 내가 선택하여 태어난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불효하는 사람들은 “부모에게 왜 나를 낳았나요?” 하며 원망합니다. 탄생의 책임을 자신이 지지 않으면 그 순간 희생자가 됩니다. 그 많은 사랑과 은혜를 입고서도 원망하는 삶을 삽니다. 자기 생존을 스스로 책임질 때 세상의 주인이 되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효는 백행의 근본입니다. 자식 된 도리를 다 해야 하는 근본 윤리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자녀들도 부모인 나를 그대로 본받아서 행동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부모가 안계시면 무자력한 타인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모셔라. 하셨습니다. 이는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삶을 깊이 성찰해 보면 부모는 나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거울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바라보는 부모의 문제는 바로 나의 것입니다. 때문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나를 깨어나게 합니다. 이 사실에 눈을 뜨면 세상을 보는 지혜가 밝게 열릴 것입니다.


저는 어머님의 깊은 사랑 속에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님이 공직에서 나오시고 사업을 하셨는데 크게 실패하시어 갑자기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버님을 많이 원망하고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사실은 집을 떠나 원불교에 출가를 한 것도 아버님과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출가를 하여 가장 괴로운 것이 부모님에 대한 불효였습니다.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니 공부에 결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을 위한 참회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50일을 넘어가니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님의 사랑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 모든 것이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버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올렸습니다. 그 후 부산 집에 내려갔는데 아버님의 눈빛이 달아져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어머니와 동생에게 아버지가 변하셨다고 말하는 순간 번쩍 나의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내가 변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바라보고 계셨으나 단지 내가 불만하며 차갑게 바라보니까 어쩔 수 없이 나를 피했던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이렇게 변함이 없었습니다. 부모는 내 존재의 뿌리입니다. 이를 외면하면 삶이 열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다른 모든 윤리가 무너집니다. 이를 잊지 말고 부모를 가슴에 사랑으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버님 앞에서 교무로 섰을 때에는 아버지는 저를 철없는 자식으로 보았습니다. 어느날 부모의 참 존재를 깨닫고는 그 앞에 자식으로 서니까 평생 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내가 한살 때 너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한 말씀으로 아버지는 저에게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여셨고 그동안의 모든 오해가 다 녹아 버렸습니다. 얼마나 외롭게 사셨는지를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저를 교무로 대접한 것입니다. 어느 위치에 있든지 부모 앞에는 언제나 자식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부모님은 어떤 모습으로 사셨다하여도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낳고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신 은혜가 너무도 크십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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