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취한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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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취한 나그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6.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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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우와 함께하는 마이드 스터디 65

남중리 길가의 큰 소나무가 심히 아름다운지라 조 송광이 말하기를 「참으로 아름다와라, 이 솔이여! 우리 교당으로 옮기었으면 좋겠도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찌 좁은 생각과 작은 자리를 뛰어나지 못하였는가. 교당이 이 노송을 떠나지 아니하고 이 노송이 교당을 떠나지 아니하여 노송과 교당이 모두 우리 울안에 있거늘 기어이 옮겨놓고 보아야만 할 것이 무엇이리요.」(대종경 불지품 20장)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따로 없나니,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보주니라.」(요훈품 13장)



공기, 물, 밥과 같이 생래적(生來的)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없어도 살 수 있는데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서 괴로워한다면 이는 집착입니다. 우리가 물이 없어 괴롭다면 당연하겠지만, 와인이나 커피가 없어서 괴로우면 중독이라고 합니다. 추위에 옷이 없어서 떨고 있으면 괴로운 것이지만, 명품 옷을 못 입어서 괴롭다면 중독입니다. 차가 없어서 먼 길을 걸어야만 한다면 고통이지만, 가까운 거리인데도 차를 몰고 가려고만 하면 중독입니다.


이렇게 중독은 무언가에 대한 집착이 습관화된 것을 말합니다. 뭐든 좋아 보이면 꼭 자기 손안에 넣고 싶어 하는 것도 우리의 습관화된 집착, 즉 중독입니다.


불가에서 바로 이러한 집착의 습관을 놓게 하는 것이 곧 수행입니다. 인간의 육신이란 유한합니다. 때문에 누구나 길든 짧든 반드시 그 끝이 있지요. 다 지나고 보면 허망하고 별로 큰 의미도 없는 것들에 정신을 팔며 삶을 허비하지 않도록 참된 눈을 얻게 하는 것 - 이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고향집을 떠나 출가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숙겁(宿劫)의 인연으로 세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닦는 게 수행입니다.


그런데 큰 마음 먹고 출가를 했으면서도 속가(俗家)에서 즐기는 것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하고, 그런데도 존경받는 출가수행승으로 대접받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처님과 법에 대한 모욕이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중생들에게도 또한 모욕입니다.


길가의 아름다운 소나무를 보며,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존경하는 스승이 머무는 도량에 옮겨놓고 같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제자의 선한 뜻을 스승이 모를 리가 없지요. 하지만 내(우리)가 보기에 좋다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나(우리)만 가지고 보겠다면 곧 탐욕이며 집착이라, 불법을 공부하는 이에겐 되레 자기를 속박하여 수행을 거꾸로 하는 일입니다. 심안(心眼)이 열렸다면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도 빼앗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으면 때때로 와서 즐기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이것이 시방일가(十方一家)의 가르침이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텅 빈 본성을 깨치고 잘 지켜서, 미추(美醜)에도 걸리지 않고 좋고 싫음(好惡)에도 걸림이 없이,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면 그것이 수도인의 여의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보살의 눈에, 제 안에서 이러한 여의주를 얻으려하지 않고 밖으로 세욕(世慾)을 좇아 나날이 자신을 얽매느라 분주한 중생의 모습이 어떨까요. 더구나 출가해서도 속가(俗家)의 즐거움에 탐착하는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요. 성인의 가르침을 만났을 때 기어코 자기를 제도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누가 출가인(出家人)이라 하고 누구를 불법 수행인이라 하겠습니까.



청산고봉상(靑山高峰上)


은월괘원명(銀月掛圓明)


홍취행로객(紅醉行路客)


흑영수요황(黑影隨搖晃)



푸른 산 높은 봉우리 위에


은빛 달 두렷이 밝게 걸렸는데


붉게 취해 길가는 나그네여


검은 그림자 비틀비틀 따르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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