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에 막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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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에 막혀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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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72

「많이 가진 자는 많이 잃게 되나니, 부유함이 가난하여도 근심 없는 것만 못하고, 높은 곳을 걷는 자는 빨리 넘어지나니, 지위 높은 것이 신분이 낮아도 늘 편안한 것만 못함을 알라. (多藏者厚亡, 故知富不如貧之無慮. 高步者疾顚, 故知貴不如賤之常安.)」


채근담에 있는 글귀입니다. 위의 말은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것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겠지요. 말의 핵심은, 아무리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해도 마음에 근심 없고 편안함만은 못하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많이 갖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제 맘대로 즐겁게 편히 살고자 함이겠지요. 그런데 그 결과가 되레 마음에 근심이 더하고 안락태평하지 못하다니요.


이른바 대권(大權)을 잡아 대통령이 되어 모든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이도,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그동안의 실정(失政)에 대해 대중들로부터 숱한 욕을 먹곤 합니다. 권력을 쥐었다는 걸 빼고 ‘맘 편한’ 것으로만 보면 그 높은 자리도 실은 필부(匹夫)보다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높은 곳일수록 넘어지기 쉽고, 귀한 것일수록 임자가 많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그 매운 맛을 모르는 것이 또한 중생이라, 길지 않은 인생길에 ‘부귀영화’라는 신기루에 평생토록 끌려서, 그저 몸뚱이만 움직일 수 있으면 돈타령이고 돈 좀 모았다 하면 그 다음엔 권세를 갖고 싶어 하지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권력과 돈이 있으면 한 천년쯤 맘껏 살다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게, 예나 이제나 우리들 눈먼 중생들인가 봅니다.


헌데 이러한 생각은 나이가 든 어른이나 아직 사회경험 없는 아이들이나 별 차이도 없는 듯 하네요. 언제부턴가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며 어린 청소년들 사이에 나도는 풍조를 보면,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철저한 물신교(物神敎) 신자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교적(儒敎的)인 생각으로 훌륭한 사람은 어떻고, 겉모습보다는 인격이 어떻고 하며 아이들에게 말해봐야 귀에 들어가지도 않지요.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기로 자타가 공인하고, 종교인구가 전 국민의 반을 넘는 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학교가 단지 ‘지식’교육에만 그치고, 종교가 주로 ‘믿음’만을 강조해 왔기 때문 아닐까요.


지식과 지혜는 서로 달라서 배움이 많아도 지혜가 없으면 그 ‘아는 것’의 포로가 되기 쉽고, 믿음이란 수행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결국 미신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배워서 더 큰 이익을 좇고 더 높은 자리를 얻으려는 이는 결국 지식 때문에 내생의 고통을 장만하고, 복을 비는 마음을 ‘신앙’으로 잘못 아는 사람은 과학도, 진리도 아닌 미신으로 일생을 살아갑니다. 저마다 다들 행복해지려고 그러는 것인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법안(法眼文益: 885-958) 선사가 어느 날 샘물구멍이 모래로 막힌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물구멍이 막힌 것은 저 모래가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안(道眼)이 막힌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선사가 스스로 답하였다.


“제 눈[眼]에 막혔기 때문이지.”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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