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저 편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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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저 편의 아리랑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9.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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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리랑카 방문 동행기 / 장상인 교무 , (교화훈련부 청소년국)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쿠마라 씨! 이 노래 어떻게 알아요?”


“교무님이 가르쳐 주셨잖아요.”


“제가 참 잘 가르쳤네요. 호호호.”


스리랑카의 교화와 교육사업을 위해 이 나라를 11년째 방문하는 최서연 교무. 최 교무와 함께 콜롬보 지역에 사는 귀환 노동자 가정에 점심과 저녁 초대를 받아 갔을 때, 한국 이야기와 웃음은 끝을 몰랐다. 능숙한 한국어와 행복한 모습은 이들의 한국 생활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리랑카 장학사업은 2001년 한 의대 입학생의 재정지원 호소로 시작되어 최 교무님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울보은회와 뜻있는 분들이 참여했다. 이번에는 콜롬보와 캘라니 의대생 16명과 바달가마, 나라말라, 마스포타, 비지타푸라 지역에 거주하는 초중고 36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었다.


일 년에 한번 있는 장학금 지급을 위해 학생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하며 전에 지급된 장학금의 현금출납부, 통장내역, 성적표를 확인하는 꽉찬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환 노동자 틸락 씨 집 2층에 마련한 원불교센터에 여장을 풀자 우리는 특별천도재를 시작했다. 2009년 내전으로 인한 유주무주 고혼과 주위 인연 영가들을 위한 천도재였다.


종교적 터울림을 마치자마자 그날그날 방문해야 할 집의 위치와 만날 사람들을 점검했다. 이렇게 계획된 일들은 일정에 따라 빈틈없이 진행되었고, 그 모습 속에서 지난 11년간의 노력과 간절한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아유보완!(안녕하세요)”


8월 6~14일에 하루 12시간 걸리는 거리를 2번의 비행기를 타고 그 동안 서신으로만 만나던 50여명의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서울외국인센터의 연례 순교인 셈이다. 어느 교당에서 이 먼 곳까지 순교를 갈 수 있을까?


봉사자인 틸락 씨가 집을 찾아가는데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방문했을 때 환하게 맞아준 가족들, 그리고 우리를 궁금해 하며 호기심을 보이는 이웃들까지 순박하고 천진한 미소로 부처님의 나라임을 느끼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 시골의사 다야난다 씨


닥터 다야난다는 새벽 천도재 6재를 마친 일요일 아침 6시 30분 우리를 데리러 왔다. 집에서 어머니가 우리에게 아침과 점심공양을 하고 싶으시다며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닥터 다야난다는 현재 나라말라 마을의 시골의사이다. 나라말라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추천하고 가정방문과 면담에 있어 가이드를 자처했다. 닥터 다야난다도 의대생 시절 원불교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가난한 학생이었으나 의사에 대한 꿈과 소신을 꾸준히 편지로 보내왔고, 의사가 된 후에도 틈틈이 소식을 전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젊은 시골의사 다야난다의 노력으로 나라말라 지역에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총 13명으로 다른 지역보다 많다. 나라말라까지 1시간 30분을 달려 그 집에서 아침을 먹고 가족들과 함께 원불교식으로 가정 기도를 올렸다. 모든 일들은 이 같은 종교의식이 끝난 후 진행이 되었다. 외국인센터만의 교화방법인 셈이다.


닥터 다야난다는 학생들과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한 집 한 집 안내하고, 우리가 영어로 한 말을 스리랑카어로 통역을 했다. 최 교무가 학생들에게 지적하는 부분이 있을 때 닥터 다야난다는 학생들을 위해 더 자세히 설명하는 진지한 모습이었다. 어느 의사가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울까? 우리는 내심 뿌듯하여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 새로 장학생이 된 의대생 프라디파


토요일 오후 모처럼 순교가 없는 날이지만, 손님이 계속 찾아 왔다. 가장 바쁜 시간은 오후로 올해에 장학융자금을 받게된 의대생 15명이 도착하여 면담이 진행되었다.


이 때 새로운 얼굴로 교수 추천서를 들고 찾아온 프라디파가 있었다. 우리는 장학금을 부탁하는 프라디파의 말에 직접 집을 방문 후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결정을 보류했다. 그리고는 프라디파의 집을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프라디파의 집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처참했다. 어머니 혼자 계시고 아버지는 편찮으셔서 요양중이라는데 집은 마치 쓰레기장 같았다. 물도 나오지 않아 어디선가 길어다 사용했고 화장실과 부엌은 방에서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밝았다. 한국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집을 방문했다며 눈물이 글썽글썽하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지어 함께 한 우리들을 오히려 미안하게 했다.


이렇게 어려운 곳에서 의학 공부를 시키니 더 보람도 있을 것이고 얼마나 기쁠까? 어머니는 프라디파가 어려서부터 주위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장학융자금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수혜자가 선정되었다.


떠나는 날까지 이곳에 온 보람을 일깨워준 스리랑카였다. 세계를 무대로, 지구촌 인류를 상대로 교법을 실천하는 길에서 스리랑카도 무한한 은혜의 현장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눈망울에 일원상이 비춰져 보였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우리의 눈망울엔 소태산 여래의 빙그레 웃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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