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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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거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10.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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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칼럼 / 임선영 , (약대교당, 전 서울경기문인회장)

에어컨 바람이 싫다고, 선풍기 바람이 싫다고 손사레 치던 내가 에어컨과 선풍기를 끼고 산 것은 올해가 처음인 듯 하다. 늘 사계절의 특색있는 맛을 즐기면서 살았는데, 올 여름은 ‘여름아! 제발 빨리 가라. 지겹다’ 를 수도 없이 되뇌면서 보냈다. 그런데 어느새 자지러지던 매미소리가 잠잠해 지고 창밖으로 가을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초가을 창가에서 밤새 들려오는 빗소리를 잠도 잊은 채 듣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게 자기를 점검하고 응시하는 시간은 계절마다 다르게 온다. 자연에서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던가. 계절따라 오는 소리와 온도에 따라 다르게 흔들리는 공존의 법칙, 지긋지긋 하다며 미움으로 보낸 여름도 거리를 두니 금새 그리워진다. 조금만 괴로우면 못 견디겠다고 난리법석이고, 조금만 떨어지면 못내 그리워지는 심사는 우리가 한번 화두로 삼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는 “나는 이렇게 고통 받았어, 그러니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해” 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옳고 그름이 너무나 분명해 자기 분석은 물론 타인을 분석하는 일까지도 뛰어나다. 고통스러웠던 절망의 나락에서 너무 오랫동안 도망쳐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옛 생활과 거리를 두니 그제야 보이기 때문일까?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충고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확인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다 보면 “삶이란 겸손을 배우는 길고 긴 수업”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인가 지긋지긋해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공존을 생각하며 살 필요가 있다. 너무 가까워 지다 보면 단점을 바라보게 되고, 그로인해 겸손해 지지 못하고 언행을 함부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숲속을 산책하다 우연히 고슴도치들을 만난 쇼펜하우어는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고슴도치들은 한겨울이 되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데, 가까이 가면 상대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게 되므로 다가서기와 물러서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상처를 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고 한다. 이른바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발견한 고슴도치 딜레마 이론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존의 거리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긴 시간을 보내며 상처투성이가 될지라도 서로에게 다가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서로의 체온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이다. 그 온기로 인해 가시투성이의 몸에서 예쁘고 귀여운 꽃이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이지만 가시에 찔려도 다가가 손잡을 인연이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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