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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12.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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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94

‘선악 미추와 자타 미오의 상(相)이 없는 자리에서 나툰 분별이라야 그 분별이 바르며, 그 분별로 진리를 증득하고 실천하여야 원만한 도인이 되나니라.’(정산종사법어 원리편 24장)



‘불보살은 함 없음에 근원하여 함 있음을 이루게 되고, 상 없는 자리에서 오롯한 상을 얻게 되며, 나를 잊은 자리에서 참된 나를 나타내고, 공을 위하는 데서 도리어 자기를 이루시나니라’하시고,‘有爲爲無爲 無相相固全 忘我眞我現 爲公反自成’이라 써 주시니라. (무본편 33장)


이번 호가 나갈 때쯤이면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자가 정해졌을 텐데요. 다수 국민의 뜻으로 새 대통령에 당선되신 분은 정말 나라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좋은 정치를 많이 해주길 기대합니다.


국민이 보기에 좋은 정치가란 좋은 생각, 바른 판단, 따뜻한 감성으로 흔들림 없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일 해주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자가 우리사회 어느 분야, 어느 단체에 있으면 말할 것도 없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겠지요.


그런데 위와 같은 품성은 사람이 애써 노력한다고 그리되는 것이 아니지요. 즉 좋은 생각과 바른 판단, 인간적 따스함 등은 사실상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본인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상태’에 의해서 저절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무언가에 대한 사욕(私慾)을 품고 있을 때는 아무리 선한 생각을 하려고 해도 그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심을 놓아버리면 저절로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또한 사람이 자기를 앞세워서 생각하면 결국 모든 판단이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흐르지만, 자기를 던져버리면 언제 어디서든 부끄럽지 않은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불교에선 마음이 그 어떤 곳에도 머물지 않고 본래의 고요하고 텅 빈 모습일 때, 그 자리에서 발(發)하는 생각이나 판단을 ‘올바른 분별’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나와 남[自他], 좋고 나쁨[好惡] 등을 떠나 일체 상(相)이 없는 자리에서 솟는 ‘앎’이 곧 바른 분별입니다. 이 분별은 일부러 지어내는[作爲] 것이 아닌, 함이 없는[無爲] 분별이며, 각자의 본성에서 솟는 참다운 분별입니다. 불보살의 행은 바로 이 분별로써 나투는 ‘무위(無爲)의 행’입니다. 이렇게 ‘함 없는 자리’에서 되레 함이 이루어지고, 상(相)이 끊어진 자리에서 오롯한 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지닌 본성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작용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진리공부에 있어서 ‘분별주착을 놓아야 한다’고 하면 때때로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분별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이 분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물을 알아보느냐?”는 것입니다.


‘분별’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사물에 끌려서 일으키게 되는 일체 마음의 상(相: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아름답고 추함 등등)을 ‘분별’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각자의 텅 빈 마음자리[성품]에서 솟는 지혜, 즉 ‘공적영지’를 ‘함이 없는[無爲의]’ 분별이라고 하지요. 첫 번째의 분별은 ‘중생의 분별’이며, 두 번째의 분별은 곧 자성의 혜광(慧光)으로서 ‘불보살의 분별’입니다. 이 분별은 주한 바 없는[無住] 마음에서 나타나는, 모든 시비와 선악을 넘어서있는 참다운 분별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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