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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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나타났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3.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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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대성 교무의 이야기가 있는 교사 3

‘분신사바’를 기억하시는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함께 펜을 쥐고 ‘분신사바’ 주문을 외우면 귀신이 나타나서 궁금한 것을 알려준다고 해서 한 때 유행했던 놀이였다. 나 또한 고등학생 시절 여러 번 했었는데 결과가 그리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귀신이야기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특별히 귀신을 목격한 적도, 소위 말하는 가위눌림 정도도 당한 적이 없어서 영대가 밝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괜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간사 근무를 마치고 군대 생활을 하던 시절, 초소 앞 미루나무에 희끄무리한 걸 보고 기겁을 하고 놀란 적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졸다가 헛것을 본 것임에 틀림없었다. 예비 교무 시절 한 방에 살던 동기가 총부 영모전에서 귀신을 봤느니 어쩌니 한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내심 긴장을 하던 즈음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나도 귀신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것인가?


무더운 여름날 밤 서원관 창 밖에 달빛은 어지간히 밝았다. 밀린 과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무심히 달빛을 감상하려던 바로 그때! 창 밖에서 분명 흰 옷자락이 펄럭이고 있었으니 법력 없는 어린 예비교무는 혼비백산하여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고 속으로 청정주만 외울 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수행자가 되어 귀신을 봤다고 놀라 이불 속에 숨어 있자니 속된 말로 쪽팔리기 짝이 없는 일이라,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귀신을 대적하자고 마음은 먹었는데 숨이 턱턱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도 나름 정신을 차려 계속 째려보니 달빛 아래 휘영청 나부끼는 귀신 옷자락은 사실은 벽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가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모습이었다.


사실을 알게 되자 맥이 탁 풀리고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맺히다가 절로 웃음이 났다. 당나라 유학길에 해골 물을 마시고 깨침을 얻은 원효대사와 같은 일화는 아니지만 그 뒤로 내가 알지 못하는 영적 현상이라도 함부로 귀신의 장난이라고 치부하지는 않게 되었다.


우리 교단도 예나 지금이나 귀신이라는 테마는 무척 흥미 있는 주제였다. 이 단어는 「월말통신」과 「월보」에 45회, 「회보」에 51회 등장하고 있다. 「대종경선외록」엔 4회, 「한울안 한이치」에 3회 등장한다. 다만 대종사님께서 「대종경」에 직접 거론하신 ‘귀신’이나 ‘영가’ 혹은 ‘이매망량’이라는 표현은 한 손에 꼽을 만큼 적게 나오는 데 이걸 보면 확실히 인간세계의 보편적 상식을 중시하신 어른임에는 틀림이 없다.


원기 14년 「월말통신」 13호에는 혜산 전음광(1909∼1960)선진이 문목(問目 ; 지금의 의두)을 연마 하시고 기고한 글이 보이는데 그 제목이 “세상에 귀신이 있는데 어떠한 것이 귀신인가?”이다.


‘사람이 귀신을 찾아보려 할 때에는 멀리 다른 데 구하지 말라. 곧 우리의 기거 동작하는 것이 신(神)의 형체(形體)요, 신(神)의 작용(作用)이다.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손을 들어 일을 하는 것이 귀신 아님이 없건마는 그 귀신이 들어서 귀신을 무서워하며 귀신을 찾으며 귀신을 반대하며 귀신을 원망하니 참으로 가소(可笑)로운 일이며, 이것이 곧 자기를 잊은 자이다.


초목도 또한 귀신이 있으니 초목의 줄기와 가지는 곧 귀(鬼)요 꽃이 피고 잎이 피며 있다 없다 하는 것은 곧 신(神)이요 신(神)의 작용(作用)입니다. 무정지물도 저 토금석류(土金石類)는 곧 귀(鬼)의 본체(本體)에 속한 귀(鬼)뿐이요 신(神)은 없는 것이다.


이상에 수다한 말을 종합하면 새가 펄펄 날아가고 개가 훨훨 달려가며 바람이 훨훨 불어오고 벌레가 짹짹 우는 것이 모두 다 귀신이니, 이 외에 더 간단히 말하면 천지만물이 다 귀신이란 말입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3월, 혜산 선진은 이처럼 그 작용을 훤히 아셨거늘 못난 후진은 미처 가르침을 챙기지 못해 한 여름 밤 귀신놀음을 하고 말았으니 멋쩍게 뒷머리만 긁적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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