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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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님의 고백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3.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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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대성 교무의 이야기가 있는 교사 4

“나는 참말로 요런 녀석을 처음 본당게… 열 살밖에 안 된 꼬맹이한테 내가 된통 당해 부렀시야… 요거시 말이여, 나가 하늘 천(天), 따지(地)를 갈차 주면 고거슬 떡하니 외워야 하는디 자꾸만 하늘에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구름이 어떻게 생기는지 고딴 것만 물어본단 말이시… 아따 그라고 말이여, 즈그 집 단감이 익을 때가 되었는데도 나가 선생인디 하나도 대접을 안 하더란 말이여, 그래서 내가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동지 팥죽을 요놈한테만 안 줘부렀어. 그라고 낮에 손님이 와가지고 이야기를 하다가 나가 호기를 부려가꼬 ‘나는 평생에 무엇에 놀라 본적이 없어.’


요로코롬 답을 했는디 진섭(소태산 대종사의 아명)이 요것이 이러더랑께.’제가 선생님을 오늘 하루 중에 놀라게 할랍니다.’ 요런 맹랑한 것을 보았나. 그래서 나를 놀라게 못하면 종아리를 때려줄 테다 했지. 그랬더니 요 녀석 하는 말을 보게. ‘내가 만일 선생님을 놀라게 하거든 후일에는 팥죽을 줄 때에 차별하지 마씨요.’ 아따 그라고 잊어 묵고 잠깐 있었는디 볏집을 쌓아놓은 곳에 불이 활활 타올라 깜짝 놀라 웃옷을 벗어서 오줌통에 적혀 불을 끄느라고 수염도 다 타 버리고 겨우 불을 껐는디 알고 봤더니 이 일을 진섭이 고놈이 벌인 일이여. 내가 잡아서 요절을 낼라고 했더니 욘석이 하는 말이‘요것이 오전에 선생님과 약조한 일을 실행한 것인디 어찌 그리 성을 내신다요?’그라고는 나한테 공부하러 다시는 안 오더랑게 내가 약속한 게 있어서 화는 못 냈는데 훈장을 살면서 이런 녀석은 처음 봤어, 야가 커서 뭐가 될라고 그라는지….”



원기 22년 ‘회보 37호’에 실린 정산종사께서 저술한 「불법연구회 창건사」 중 동짓달 팥죽으로 가르치는 학동을 차별하던 덜 된 훈장 선생을 골탕 먹인 맹랑한 열 살짜리 소년 진섭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관점으로도 대담하기짝이 없는 소년의 행동에 훈장 선생이 얼마나 기겁을 했을까? 생각하면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절로 웃음이 나는 일이다. 이때 훈장의 이름을 ‘김형오(1910~1985)’ 선진은 영산성지 구호동에 사는 ‘이화숙’ 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삼 년 남짓 서당 교육을 끝으로 진섭은 글공부를 작파하고 본격적인 구도 생활에 몰입한다. 그 유명한 삼밭재 마당 바위에서의 산신을 만나기 위한 기도가 이 사건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인격의 훈장 선생을 만났기에 진섭이 구도 행각에 나설 계기를 만들게 되었으며, 이후 주세불로 거듭나게 된 ‘역행 보살’의 숨은 조력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더구나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3학년 중퇴에 불과하며 이후에도 어떠한 고등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소태산이 어느 종교의 성자도 시도하지 않았던 교리의 제정과 경전의 편찬에 직접 나서 놀라운 체계와 논리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끔 이 시절 대종사의 예화를 들어 설교를 하는데 이때마다 “교도님들 자녀가 대종사님처럼 학교 공부를 작파하고 진리를 구하겠다고 열심히 다니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다(?)”는 답변은 들었어도 힘닿는 대로 돕겠다고 답하는 교도들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아들이 서당을 관두고 구도행각에 몰입하게 되자 대종사의 부모님은 어떻게 대처하셨을까?


「교사」의 기록에 따르면, “부친께서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다가, 마침내 대종사의 정성에 감동되어 그 구도를 적극 후원하셨으며, 대종사께서 20세에 이르도록 도사 만날 소원도 이루지 못함을 보시고는 ‘마당바위’ 부근에 수간의 초당을 지어 심공(心功)을 들이게도 하시더니…” 이렇게 아버님은 물론이고 어머님도 간혹 떡을 해서 공양을 올리게 했다는 구전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자녀를 믿고 후원하셨다고 한다.


교당을 다니다 출가를 결심하고 아버님께 뜻을 말씀드리니 “기껏 키워 놨더니 듣도 보도 못한 원불교 ‘중(?)’이 되려고 해?” 하면서 실망하시던 모습에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이 떠오른다(물론 지금은 늘 필자가 전무출신 잘하길 바라시지만).


다음 회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식을 믿고 후원하신 소태산 대종사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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