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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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엘레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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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 칼럼 / 김덕권 , (여의도교당)

슬픔을 노래한 악곡(樂曲)이나 가곡(歌曲)을 프랑스어로 엘레지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말로 비가(悲歌) 또는 애가(哀歌)라 할 수 있지요. 옛날 최양숙의 샹송 ‘황혼 엘레지’가 생각납니다.「영원한 사랑 맹세하던 밤/ 정열이 불타던 시절」그 정념적(情炎的) ‘황혼’이 무척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을 법도 한 것이 노년의 삶이 아닌지요?


그런 아름다운 황혼일지라도 ‘황혼이혼(黃昏離婚)’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온몸을 떨며 아마 죽음을 생각해야 되는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얼마 전 40년간 남편과 시앗 사이에서 무시만 당하고 살아온 70세 할머니의 이혼소송에서 법원이 할머니의 손을 들어 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합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황혼이혼은 뉴스 감이었는데 이제는 이웃집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혼은 하루 333쌍, 한 시간에 14쌍이라고 합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 11만 4000쌍 중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율이 26.4%로 신혼이혼율보다 높다고 하네요. 참 씁쓸한 얘기지만 이건 현실입니다.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 수십 년 참고 살았는데 다 늙어서 이혼하면 뭐 하느냐?”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죠. 사회풍조가 자식이나 남들의 이목보다는 노후의 행복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된 세상입니다. 여성들이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합니다. 남편의 권위적인 자세, 일방적인 대화, 퇴직으로 인한 경제적 상실, 매사에 잦은 간섭 등이 이유이지요. 이제는 여권이 크게 신장되어 여성이 자아(自我)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그런데 황혼이혼을 하면 남자는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고, 여자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고 하네요.


‘그까짓 이혼, 하자면 못할 줄 알고?’ 이런 생각은 오산입니다. 노년의 이혼은 젊은 시절의 이혼과는 차원이 다르죠.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는 배우자와 가족이 소중해집니다. 더욱이 배우자는 같이 늙어갈 유일한 동반자이기 때문이죠. 젊은 시절에는 이혼을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배우자와 가족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황혼이혼의 경우 그런 일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대부분 혼자 쓸쓸하게 죽어가는 비참한 결과만 초래될 뿐입니다.


황혼이혼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배우자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삶의 소중한 동반자로 여기고 정성을 쏟아야 하죠. 그렇다면 황혼이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은퇴 후 부부의 관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남편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죠. 은퇴는 남편들에게만 제2의 인생이 아니라 부인들에게도 또 다른 시작인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이 정년을 맞으면 가사(家事)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 아내들에게 은퇴 전과 같이 가족과 남편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오히려 부인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동안 무심했던 집안일을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하면 부인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남편은 황혼이혼을 당할 염려가 없는 것이죠.


부부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누가 누구 위에 존재하는 상하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단점을 보완해주는 동지적 관계이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며 동료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의 노후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황혼 엘레지를 어떤 곡조를 부르실 것입니까? 비가나 애가가 아닌 ‘황혼찬가(黃昏讚歌)’를 부르고 가면 정말 좋겠습니다. 배우자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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