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주무실 때 이를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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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주무실 때 이를 가나요?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8.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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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 칼럼 / 김성규 , (분당교당)

엊그제 치과에 들렀을 때다.


“혹, 주무실 때 이를 가시나요?”


“아뇨. 아직껏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요? 그래 보이나요?”


고개를 갸우뚱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라도 감지한 듯한 의사의 질문에 속으로 뭐가 잘못 됐나 싶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내가 평소 이를 갈면서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치아들이 이상한 쪽으로 많이 닳아 있어서요.”


전문의가 보기엔 특히 나의 앞니 부분이 보통의 경우보다 다르게 많이 닳아 있어서 뭔가 나의 저작(詛嚼)습관이 안 좋거나 아니면 혹 이를 갈고 잠을 자는 습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보면서 구강관리를 달리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소견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게 다시 확인해 보았다.


“아니요. 당신이 이를 가는 걸 본 일은 없는데요.”


그러면 그렇지! 내가 볼성 사납게 ‘바드득빠드득’ 이를 갈면서 잠을 잘 리가.


그러나 엘리베이터 안 거울 앞에서. 언뜻 비춰 본 자신의 얼굴표정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울에 비춰진 나의 얼굴표정이 너무나 굳어져 있었다. 무언가 잔뜩 화가 난 것처럼 무겁고 차갑게 굳어져있는 표정이 도저히 내 얼굴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금방 큰 싸움이라도 걸어 올 태세로 한 일자로 입을 앙 다물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서 있는 거울 속 노인네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아니, 아무리 심기가 사납더라도 그렇지, 집 밖에 나와서까지 그런 얼굴을.’


억지로 이렇게 저렇게 얼굴 표정을 고쳐보면서 다시 거울 속을 흘끔거려보지만 역시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다.


“생각해 봤는데요, 내가 평소에 입을 꽉 다물고 지내는 편이라서, 평소의 그런 습관 때문에 혹시 치아에 무슨 문제가 생겼으면 모를까, 아내에게도 확인해 봤는데 이를 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절대로.”


며칠 후, 다시 의사 앞에서 나는 몇 번이나 절대로 이를 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렇군요. 이를 너무 꽉 다물고 지내면 이가 상할 수가 있습니다. 위아래 이가 서로 닿지 않을 정도로 하고 지내는 게 좋습니다.”


혀끝을 입천장 앞부분에 약간 올려댄 상태로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다물리지 않게 하는 게 치아나 구강(口腔), 얼굴표정 관리에도 좋다는 설명이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치 밀림 속 사자같이 근엄한 위엄과 풍모(?)로 세상을 제압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입을 굳게 다물고 지내온 듯하다. 온유하고 부드러운 표정보다는 어딘가 좀 더 강하고 절도 있고, 또 위엄 있는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가능하면 말수도 줄이고 잘 웃지도 않고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어느 때부턴가 점차 표정이나 몸가짐이 딱딱하게 고착이 되어 바로 거울 속 그런 모습이 돼버린 게 아닌가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철없을 적 오만(傲慢)이 여든 살 만행(漫行)으로 굳어버린.


우리 어머니는 무거운 영웅적(?) 위용보다는 부드럽고 섬세하고 또 정서적, 감성적이고 미학적인 그리고 인문적(人文的) 내면의 둥그런 심성을 나의 본래 캐릭터와 인간상으로 만들어 이 세상에 내보냈을 것이건만 말이다. 나는 잠잘 때 절대로 이를 갈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구강관리를 잘 하면 엘리베이터 안 거울 앞에서도 늘 편안하신 부처님 얼굴처럼 포근한 자신의 이미지를 확인해 갈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환한 기분이 되어 힘주어 치과문을 밀고 나왔다. 마치 일곱 살 철부지 어린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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