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을 아끼고 사랑하는 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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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을 아끼고 사랑하는 충정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9.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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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 칼럼 / 김성규 , (분당교당)

서울교구 재가 원로교도들이 경산 종법사에게 올린 ‘진언(進言)’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언은 ‘교단을 아끼고 사랑하는 충정(衷情)에서’ 마침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저간의 무거운 ‘뜻’을 담아냈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그 충정이 얼마나 깊었으면 제 살을 깎는 아픔과 ‘물의’를 무릅쓰고 나섰겠는가를 생각해보면서, 아무쪼록 금번의 진언이 교단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결속과 재도약의 새 전기로 승화되기를 충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만사는 불여튼튼이라 하였다. 아무리 믿고 또 믿는 일일지라도 원칙을 따라 다지고 또 다져가야 하는 것이 공가(公家)의 일이다. 그리고 공사(公事)는 어느 집단에서나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충분한 공의(公議)를 통하여 보다 많은 지혜와 중지를 모아 실행해 나가는 게 철칙이다. 정산종사님도 ‘무엇이나 모으고 모으면 큰 것이요, 거기서 위력이 나온다.’고 공가의 처사(處事)를 가르치셨다.


우리 교단은 그 역사가 짧은 만큼 더욱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분방한 정신세계의 지도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자기성찰과 분발로 시대를 주도해나가는 새로운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투자’와 ‘합리적이고 투명한 운영시스템의 확충’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불교는 교화와 수행을 통하여 성불제중과 제생의세의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정진 하는 종교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교리와 인재(교무)들임은 두 말이 필요치 않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진화해가는 오늘날과 같은 문명사회에서는 보통의 실력과 노력으로는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을 제대로 지도해 나가기가 어렵다. 다방면의 전문화된 높은 수준의 역량을 가진 인재들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하고 완벽한 것은 없다. 어디에나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와 양심적인 뜻을 가진 집단이라도 그 규모가 커지고 조직이 방대해지면 반드시 더욱 유의해야 할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예컨대, 변화를 모르는 조직의 메너리즘과 퇴행적 관습, 방만한 운영체제와 비효율성, 재정의 불투명성 그리고 신선했던 창립 초기정신의 후퇴 등등이다.


모름지기, 이러한 우려와 예측가능한 문제점들을 미리 성찰하고 꾸준히 대비해 나가는 게 현명한 리더십이 주목해야 할 요건이다. 교단은 언제나 존경과 신뢰 받을 수 있는 훌륭한 교단의 이미지와 실제 활동역량의 진작에 힘써야 한다. 실제의 행동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모든 출가재가가 자부와 포부로 수행과 교화에 충실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는 노력이 교단발전의 핵심동력이 되는 것임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에 속할 것이다.


일체의 만법(萬法)은 인연화합의 소생(所生)이다. 어디에서나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특히, 지금은 100년 성업을 앞두고 재가출가가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로 전심전력해야 할 때다. 길을 가다보면 고비를 만나기 마련이다. 어느 사회든지 부단한 자기혁신과 착오의 광정(匡正)을 통해서 발전해 나간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귓전을 맴돈다. 비 온 뒤에 더욱 땅이 굳어진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되뇌어보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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