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하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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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는 나무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12.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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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칼럼 / 정은광 교무 , (원광대학교)

나는 어릴 때 스님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마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이 되면 가을걷이의 좋은 쌀 한가마를 공부하는 절의 스님께 시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지역에 불심 깊은 신도가 그해 농사를 지어 이십리 길 절에 쌀을 공양을 하러 등짐을 지게에 지었다. 새벽부터 집을 나서 조그마한 개울을 건너는데,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힘을 써야 했다. 거의 다 건너갔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방귀가 나왔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혼자 고민을 했다. 부처님께 올릴 공양미를 방귀 냄새에 오염을 시켰으니 양심상 도저히 기도 정성미라고 하여 절에 갔다드릴 수 없었다. 결국 그 쌀을 지고 집에 되돌아와 다른 쌀로 바꾸어 먼 길을 걸어 절에 공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추수를 하고서 감사하는 마음에서 온갖 정성을 드려 가장 좋은 쌀을 골라 시주를 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삶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끝없는 정성이다. 마음으로 정성을 가득하게 채우는 것은 자신에 대한 힐링이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다운 기도가 된다. 우리는 다들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실수하고 또 못 미치는 인생이 거듭되면서 무기력하기도 하고 헛발 짓한 인생을 산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찬바람이 불고 한 겹 옷을 입을 때마다. 산과 들에 다니던 다람쥐나 야생동물들도 서서히 겨울 살림준비를 한다. 몸에 살을 더 찌워서 동면을 할 때 소모되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처럼 수행자들도 옷 벗은 겨울나무들같이 마음 비우는 공부를 한다.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달이 12월이다. 그리고 한 해 동안 내안에 파고든 얼룩진 상처들도 아무는 달이다.


인연으로 맺어진 인간관계, 어쩔 수 없이 맺어진 삶도 있겠고 또 이것저젓 계산이 나오지 않아 사는 사람도 있다. 우연히 신문을 보니 나이 들어 서로 마음이 안 맞아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글을 봤다. 삶은 끝없이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이다. 그러나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많은 상처를 동반한다.


언젠가 사찰에 가서 밥을 한 끼 얻어먹은 적이 있다. 그때 함께한 스님이 말했다. 혹시 정통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정통(淨桶)이란 깨끗할 정, 그릇 통자이다. 다시 말하면 절에서 화장실(해우소)을 청소하는 직책이 바로 ‘정통’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는 같이 먹으며 먹는 즐거움을 나누지만 배변을 할 때는 같이 나누질 않는다. 깨끗하고 더럽다는 인식이 우리 마음에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 스님이 하는 말“ 중은 호불호를 가리지 않아야 진짜 중입니다. 얻어먹고 시주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무슨 좋은 거 더러운 것을 가리겠습니까. 그 정신만 살아 있으면 중 노릇은 참으로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스승님께서 주신 감동적인 말이다. “남 꼴 보기 어려운 것을 꼴 보는것이 큰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려놓는 것, 사람 꼴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나를 내려놓으면 주위는 편안해진다. 창가에 앙상한 가지로 서성이는 은행나무, 안타깝지만 화려한 잎들은 찬바람 속에 모두 내려놓았다. 값진 것일수록 내려놓는 것이 마음공부하는데는 제일이다. 애착심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상처내는 독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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