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더 단순하게 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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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더 단순하게 맑게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2.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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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칼럼 / 정은광 교무 , (원광대학교)

오랜만에 눈이 내리니 춥기는 하지만 마음이 편안하다. 도시민들이 살기엔 춥지도 않고 눈도 안 내렸으면 좋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적당이 눈이 쌓여야 풍년이 된다 하니 사는 모습에 따라 세상은 공평치가 않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나 뵌 선배님께 굴 국밥을 사드리고 연초 인사를 나누는데, “올해는 눈이 많이는 내리지는 않아” 그래서 “왜 그런가요?” 하니 갑오년의 ‘오(午)’가 불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하늘에서 눈이 내리려다가 따뜻한 기운에 물기가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었다.


계절마다 좋아하는 기호가 있는 사람들은 꽃 피는 봄이 좋다 하고, 어떤 사람은 벗고 다닐 수 있는 여름이 좋다고 한다. 난 두꺼운 옷을 입어도 하얀 낭만이 있는 겨울이 좋다. 살아가는데 나름대로의 생존비법(?)만 터득하면 한겨울을 잘 지낼 수 있다. 새해 들어 여러 사람들이 복 받으라고 ‘문자’를 보냈고 이런저런 동영상도 왔지만, 진즉 정성스럽게 보내온 덕담 편지는 없었다. 삶이 건조한 건지 이제는 그런 정감도 찾기 힘들다.


지난 봄, 섬진강 끝자락 광양에 매화꽃 필 때, 나는 정기 선(禪)을 일주일간 다녀와(無門關)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 선 기간 중, 저녁식사를 하며 원장교무께 “교무님, 이 좋은 계절에 그냥 앉아 선만 할 수 있나요. 하루 날 잡아 매화꽃 향기 맞으러 남쪽으로 떠나게요.” 뜻밖에 제안에 이튿날 아침, 버스 대절하여 김밥 싸고 간식과 귤 몇 개씩 먹으며 이른 봄, 섬진강변 매화나무 흩날리는 꽃차렴을 다녀왔다. 앉아 있으며 명상한다고 마음이 온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 계절에 순응하는 것도 삶의 여백이 향기롭기 때문이다.


선을 마친 후 마음도 맑게 담담해지자 스스로 나만의 내규(內規)를 만들어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첫째, 저녁 밥 먹고 8시 넘으면 불빛을 작게 한 후 좌복에 앉아 한 시간 이상 조용히 禪을 하는 것이고, 둘째, 음식을 담박하게 먹어 식탐을 하는 습관을 버리며 셋째는 눈이 침침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는다.’였다.


언제부턴가 저녁 9시 뉴스를 보면 마음이 우울해서 차츰 TV를 멀리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은 고요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몇 개월 지나 어느 날, 앉았다 일어날 때 고관절이 조금씩 아팠다. 가까운 의원에 엑스레이를 기분 좋게 찍고 나니 의사 하는 말 “오랫동안 앉아 있었나요” “네, 좌선을 밤 늦게까지 좀 했습니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이제 그거 고만 두세요, 나이가 들면 근육에 탄력성이 적어져 고관절 근육에 무리가 생깁니다. 물리치료 하시고 쉬세요.”


문득 어느새 ‘육신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헐거운 육신 끌고 다니느라 애썼다” 하며 마음으로 몸을 위로했다.


두 번째 음식을 담박하게 먹는다는 뜻은 맛있다고 더 먹지 않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내 마음도 어느새 욕심이나 비교심이 없어졌다. “먹는 걸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옛 수행자의 말처럼, 체중도 6킬로나 내려앉았다. 나머지 세 번째는 책은 잠자기 전에 잠시 한 시간 정도 보는 거다. 장터에서 국밥 먹다 만난 친구처럼 잠깐 스치듯 보니 책도 쉬고 나도 쉬는 일상이 되어, 마음도 한가해졌다.


부처님 말씀을 전했던 능엄경에 “쉬는 게 깨달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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