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과 일본의 임상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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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과 일본의 임상불교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6.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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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 칼럼 / 김혜월 , (금강대 연구교수, 화정교당)

이번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의 파장이 전 국가적으로 무척 큰 것 같다. 이러한 때에 종교는, 특히 원불교는 한국사회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답은 종교지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 중의 하나를 몇 년 전에 이에 버금가는 국가적 트라우마를 겪었던 일본의 경험을 통해 구해보려 한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대지진과 츠나미, 그로 인한 원전 방사능 누출사건이 가져온 일본 내의 파장은 다양하고도 심각했다.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 국민 개인들 역시 직간접적으로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국가적 재난이 닥친 이후 일본 국내외의 각종 NGO(엔지오, 비정부기구)와 NPO(엔피오, 비영리단체)들은 일본 정부의 재난관리매뉴얼보다 더 신속하게 움직이며 피해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 이후 일본불교 내의 풀뿌리 운동조직들은 소단위로 지방화(localized)된 그룹 간의 네트웍을 구축하고 있었던 덕분에 활발하게 재난구조 활동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본 불교의 신생 결사조직들과 교단 내 조직들, 개인적인 승려 혹은 사원, 그리고 불교에 뿌리를 둔 NGO들은 유가족 자살방지, 사망자를 위한 장례식과 추모의식, 생존자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상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난 피해자 지원 사업을 실천했다.


가장 힘든 피해지역(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 3개 현)에서 불교 사원들은 츠나미로 인해 거주지를 잃은 이들의 대피처가 되어주었다. 미야기현의 이시노마키시에서는 68개 대피소 중에 4곳이 조동종사원을 포함한 불교 사원이었으며, 134명의 이재민을 4월말까지 수용하고, 80명 정도는 8월초에 새로운 임시거처로 옮기기 전까지 보호했다. 미야기현의 케센누마시에서도 77개 대피소 중 6개소가 불교 사원이었다.


불교 승려들은 단지 피해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츠나미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정기적인 추모행사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왔다.


최근 일본 불교에서는 이처럼 재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자원봉사자 훈련프로그램을 임상불교(臨床佛敎, Rinsho Buddhism)로 부르고 있다. 이 ‘臨床(rinsho)’을 바로 영어로 번역한다면 ‘클리니컬(clinical)’에 해당되며, 임종케어와 호스피스 업무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Rinsho(린쇼)’는 인간의 네 가지의 핵심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인 생로병사가 발현되는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인 영역 안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공식적인 상담활동은 심리상담가라기 보다는 적극적인 경청자인 그룹 리더와 함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또래상담(peer counseling)’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이러한 상담은 차와 스낵을 함께 하면서 대화하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티 파티(tea party, 일어 : 오챠카이 ocha-kai)’ 이벤트로 진행된다. 이 티 파티에는 대피소 내에서의 제한된 삶에 좌절감을 느끼고 지루해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피해자들과 함께 풍선아트나 억눌린 감정 들을 제거할 수 있는 펀칭 백 등을 제공하는 ‘놀이 테라피(play therapy)’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또한 가장 적극적으로 임상불교를 확산시키는 일에 나서고 있는 진세이쿄는 심리-정신 케어를 위한 프로그램 훈련은 물론 물리적 치유를 돕는 테라피인 ‘온큐(Onkyu)’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4.16을 겪은 우리 한국사회의 종교 교단들은 어떠한가. 오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진도 팽목항에서 빨래봉사를 하고 계시는 두 분 교무님의 사진을 보면서 고마움과 안도감, 그리고 지금 내 일에만 매달리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이 어우러짐을 느낀다. 부디 이번에는 피해자들이 전생에 지은 업 때문에 저런 일을 겪게 되는 것이라거나, 믿음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심판받은 것이라고 설교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없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울고 있는 유가족들, 그리고 한국사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손길’이고 ‘위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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