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호와 법명을 동시에 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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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호와 법명을 동시에 주다니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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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종경톺아보기 ⑪ / 박용덕 교무(군북교당)


삼산 김기천, 팔산 김광선, 칠산 유건 선진의 한결같으신 말씀 “먼 소리당가! 우린 종사님 대각 당년에 입문하면서 법명을 받고 경신년(원기5년)에 법호를 받았는디.”
법무실 시자(侍者)로서 이공전은 (당시) 정산종법사의 하명을 받고「대종경」편수실무를보게되었다.‘ 서품’은 처음에 ‘초도품’으로 정산의「불법연구회 창건사」를 근거로 작성되다가 종법사의 하
명에 따라「교사」를 따로 내기로 함에 따라「논어(論語)」식으로 법어만 편집하기로 하였다.
서품 14장에“원기 사년 팔월 이십일일(음 7월26일)에 생사를 초월한 구인 단원의 지극한 정성이 드디어 백지 혈인의 이적으로 나타남을 보시고 (중략) 법호와 법명을 주었다.”고 기록하였다. 법호와 법명을 동시에 주다니? 그때 중앙 송규는 불과 19세였다.


법인성사 시에 법호와 법명을 동시에 주었다는 기록은 정산의「불법연구회 창건사(1938, 회보 43호」46~47쪽에 근거한다. 창건사 ‘제12장 단원의 기도’에는 속명, 법명, 법호 도표까지 올려놓았다.


이 자료 이전에 1935년‘삼산 열반 연보’에는 원기5년 경신년에 변산에서 대종사께서 법호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불법연구회가 공인하는 부서 교무부에서 올린 자료이다. 「회보」20호(1935)에 실린 불법연구회 교무부의 ‘고삼산 김기천 선생 역사찬’에“28세(丁巳) 8월에 불법을 연구하기 위하여 기성단을 조직한 바 회원 9인으로 1단을 정하고 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 중앙으로 9인의 번호를 정하니 그 단원의 번호와 씨명은 여좌(如左). 건 이재철, 감 이순순, 간 김기천, 진 오창건, 손 오내진, 이 박동국, 곤 유건, 태 김광선, 중앙 송규 31세(庚申)에 종사주께옵서 9인 단원에게 호를 주실 때 씨에게 삼산(三山)이라 하사하시다.”
「회보」52호(1939)‘ 고 팔산당 김광선 선생약력’에도 동일한 내용의 기록이 보인다. “ 42세경신년에종사님께서 9인단원에게 법호를 주실 때 팔산호(八山號)를 봉수(奉受)하였으며”, 1963년 교화부에 편수과에 근무하는 송천은(필명 續流)은 중앙수양원에서 칠산 유건을 인터뷰하였다. 84세의 고령 칠산은 경신년에 대종사께서 변산에서 이순순을 불러 9인 제자들에 법호를 주었다고 회상하였
다.(원광42호)


경신년은 원기5년, 원기4년 법인성사 다음 해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삼산 역사와 팔산 약력 어디에도 기미년 법인성사 때 일시에 법명을 받았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법인성사 이전에 법명을 주었다는 일화는 여러 건 전한다.


팔산은 대종사 대각당년 유월, 밀밭을 베다가 상서로운 광명이 선회하는 것을 보다가 ‘광선(光旋)’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천도교를 믿던 칠산은 조카의 위력에 놀라 예를 갖추지 않고 탕건바람에 제자되길 청하여 ‘건(巾)’이란 법명을 받았고, 천정리 삼산에게 지식인으로서 그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해 “훈장을 했으면 몇 천 년 했느냐”면서 ‘기천(幾千)’이라는 법명을 주었으며, 순일(旬日; 열흘)마다 보는 예회에 빠지는 일이 잦은 이산에게 열흘마다 빠지지 말고 참예하라고 단단히 당부하라는 의미의 순순(旬旬)이라는 법명을 주었다. 맨 늦게 입문한 송규는 대종사가 별을 보고 화해리에
찾아갔다고 하여 규성(奎星)을 의미하는 ‘규(奎)’라는 법명을 주었다. 송규는 자신의 법명을 무오년(원기3년) 7월 29일 받았다는 자료를 남겼다.(사진 참조)
이로 볼 때 법명을 동시에 한 날에 주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가장 나이 어린 제자 경상도 사람한테만 특별히 법명을 주었을 리 만무한 것이다. 입문일(제자가 된 날)을 기해서 그 기념으로 법명을 주었을 법한 것이다.
영광지부장 겸 교무부장(‘창건사’집필 당시 직책) 송규의 주장에 따를 것인가? 불법연구회 중앙총부 교무부의 공식자료를 따를 것인가? 삼산, 팔산, 칠산의 증언을 따를 것인가. 법무실 시자 이공전
은 정산종법사의 저술에 따랐다. 경전은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대중의 공명을 얻어야 한다.


* 그동안 소중한 옥고(玉稿)를 전해주신 박용덕 교무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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