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간 성품을 여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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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간 성품을 여의지 말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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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세관교무와 함께하는 의두23 기행(29) / 우세관 교무(김화교당)

사람이 깊이 잠들어 꿈도 없는 때에는 그 아는 영지가 어느 곳에 있는가?
오늘은 의두요목 10조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꿈도 없는 상태와 꿈이 예지력을 지니거나 사실로 나타나는 현몽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꿈도 없는 상태
꿈도 없는 때 우리의 마음은 성품에 계합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어떤 상태일까요? 성품은 분별과 사량이 없는 절대 고요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경계에 요동치는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성품의 존재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면 흑판이 있지요. 본래 까맣거나 녹색인데 이곳에 선생님이 분필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하나씩 쓰다보면 어느새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흑판이 온통 많은 글씨와 그림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본래 텅빈 흑판이 성품이라면, 흰 글씨로 빼곡히 차버린 게 현재의 중생심입니다. 하지만 지우개로 지우면 다시 텅빈 흑판이 되지요. ‘성품과 마음의 관계’는 이러합니다.
우리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2장에 보면 “성품은 본연의 체요, 성품에서 정신이 나타나나니, 정신은 성품과 대동하나 영령한 감이 있는 것이며,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요, 마음에서 뜻이 나타나나니, 뜻은 곧 마음이 동하여 가는 곳이니라.”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마음을 쉬고, 의식 작용을 멈추면 성품에 계합하는 것입니다. 복잡해진 흑판 지우듯 흩어진 마음을 닦으면 성품에 계합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두렷해지면 그것을 정신이라 하고, 그것은 분별과 주착이 없는 경지라 했습니다. 말만 어렵지 흑판과 분필 글씨와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2. 개꿈과 현몽의 의미
현실에서 분별과 주착이 강하게 나타나면 요즘 말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요. 이것이 더 강해지면 꿈속에서도 나타납니다. 나라의 운명을 알리는 꿈도 결국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하니까 나오는 것이지요. 태몽이라는 것도 아이를 가지려는 원이 있거나 때가 되니까 꾸는 것이지요. 결국 꿈이라는 것은 강한 분별주착, 사량심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현몽이라는 것은 분별을 하되 끊임없이 사리연마를 한 결과입니다. 어느 하나에 집착하여 오래도록 연마를 하면 그 답이 나오게 되어 있지요. 정성을 들여 어느 하나에 골똘히 의두를 연마하면 무심히 TV에서 나오는 말이 답으로 맞춰지기도 하고, 길에서 노는 아이들의 말 속에서 답을 얻기도 하고, 책이나 신문을 읽다가도 그 행간에서 답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처럼 현몽이라는 것도 결국 골똘히 어느 하나에 대한 정성스러운 고민이 계속될 때 우연히 다가오는 타력의 도움입니다.
‘꿈도 없이 잠이 들었다’는 것은 마음이 텅빈 상태이고 일원상의 진리에 합해 있다는 것입니다. 일원상 진리의 보편적인 속성은 ‘돈공’입니다. 그냥 (한 공간이) 텅빈 것이 아니라 일체의 형상이나 분별심마저 쉬어버린 자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일원상 진리에 합일한 부처가 되기 위함입니다. 부처는 완전자이고 진리적인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적인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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