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기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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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기도처럼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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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울안칼럼 / 정은광 교무(원광대학교)

오랜 만에 청정 제주를 갔다. 장맛비는 어설프고 연일 습습했다. 풀들도 지쳐보였지만 산간에 가끔 구름이 지나다 뿌린 비 때문인지 그래도 넉넉한 바람이 불었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비와 바람이 골고루 내리고 불어야 삶이 조화롭다. 바람 돌 여자 여기에다 비와 구름이 합쳐야 제주의 날씨라고 하겠다. 삼다도(三多島)가 아니고 요즘은 오다도(五多島)다.
구름이 어디서 만들어져 어디로 떠돌다 어떤 상황에서 어디를 향해 비를 내리는지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구름이 하는 일들은 세상사는 일에 직접적인 관여를 한다. 하얗게 뭉쳐 새처럼 곱게 나는가 하면 어느새 비바람의 흔적을 깊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 우리네 삶과 같지 않는가.
무상은 자연에만 있는게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끝임 없이 이뤄진다. 때로 혼자 떠난 여행이 좋은 것은, 동행자가 없어 구속받지 않고 번거로움도 허허함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3년 전 이때쯤, 아내의 암투병으로 위로의 가족여행을 떠났을 무렵이었다. 재발이 되면 병을 고칠 수 없을 거란 어두운 생각에 위로차 가족을 데리고 낯선 섬에 내려놓았다. 묵은 밭 옥수수 긴 수염
열매처럼 힘없고 맑은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지금도 그 바람 속에 스며있었다.


조그만 시간도 바람 끝 실타래처럼, 뭔가 잘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주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선배는 재밌는 얘기를 했다. “내가 육지에서부터 인연이 되어 키워온 강아지가 있었어, 누구에게 맡기고 오려해도 그럴 사정이 안되어 결국 섬까지 데리고 와 교당에 함
께 살았지 언제부턴가 영특하게도 49재를 지낼 때면 법당 한쪽에 앉아 신기하게도 염불하는 소리를 같이했지. 사람들은 처음에 ‘아닐 거야’하며 반신반의했는데 재를 모실 때마다 ‘위령의 노래’를
흥얼거렸어.”
‘풍랑이 그치었으니 이제는 편안하시리 피안을 바라 다 보며 가쁜 숨 내쉬어보세 ’재에 참석한 사람들은 개가 참 기특하다 했는데 그도 나이가 들어 시름시름 앓다 어느 날 눈을 감았다고 했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을 잃게 되면‘잃었다’라고 말하지 말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라고 말하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습니까? 그이 또한 왔던 곳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재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아마 개도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임에 틀림없다. 삶은 인연이고 훈풍과 섞여진 비릿한 바람이다.
가끔 정리되는 생각은 수행자는 ‘나누는 일’과 ‘스스로 맑은 정리’두 가지로 살아간다. 그것만이 세상을 맑히는 일이다. 마치 구멍 송송 뚫린 제주 돌담처럼 스스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멋스러움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이다.


귀로의 비행기에서 아이 손을 잡고 두 부부가 앉았다. 왼쪽 부부는 기내에서 먹을 간식거리로 젤리사탕을 준비해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고 다른쪽 젊은 부부는 그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가만 있어.
쉬,’하며 손을 코에 갖다 대었다. 비행기가 이룩하자 무릎에 아이는 답답하다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고, 얼마 후 왼쪽의 아기엄마가 사탕을 꺼내 우는 아이의 입에 넣어 주자 그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싱글벙글 해졌다. 함께 있던 승객들은 이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까운 벗이보내온 글을 옮긴다. “기도의 목적은 남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고 복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을 받아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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